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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4년, 단 하나의 종교가 세계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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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4년, 단 하나의 종교가 세계를 지배한다

입력
2017.06.2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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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4: 세상의 종말

부알렘 상살 지음ㆍ강주헌 옮김

아르테 발행ㆍ360쪽ㆍ1만5,000원

알제리 출신의 작가 부알렘 상살은 현 정부 체제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유럽권에서 열렬한 응원을, 고국에서는 검열과 활동 제약 처분을 받았다. 아르테 제공
알제리 출신의 작가 부알렘 상살은 현 정부 체제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유럽권에서 열렬한 응원을, 고국에서는 검열과 활동 제약 처분을 받았다. 아르테 제공

“단편은 작가가 이 세계를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다. 장편은 (현실과)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다.” 소설가 김영하의 ‘장르 구분법’에 딱 떨어지는 신작이 나왔다. 제목부터 조지 오웰에 대한 존경을 담뿍 담은 장편 ‘2084: 세상의 종말’은 오웰의 ‘1984’가 그러하듯, 빅브라더가 세계를 지배하는 가상의 2084년을 그린다. 단 그곳을 움직이는 키워드는 이념이 아니라 종교다.

‘다른 세계’를 창조해야 하니 깔아둬야 할 설정이 많다. 소설은 2084년이 작금의 세계와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를 설명하는 데만 100여쪽을 할애한다. 화폐단위(디디)같은 조어부터 언어와 계급, 종교 의식, 관할 구역까지 동그라미치며 읽어야 할 고유명사들도 속출한다. 영화로 치면 로드 판타지로 분류될 이 소설의 스케일은 ‘슈렉’과 ‘반지의 제왕’ 중간 어디쯤이다. 2부 중간까지 이어지는 지루함을 극복하면 뒷이야기가 엄청나게 궁금해지는, 살짝 유치하고 교훈적인 장편 소설의 재미를 볼 수 있다.

수 차례 대성전(大聖戰)을 치르고 탄생한 대제국 아비스탄은 경전 ‘카불’로 강력히 통제되는 사회다. 전체주의 시스템은 “욜라로부터 계시를 받아 (욜라의 대리인)아비에 의해 잉태되었고, 정의로운 형제회가 운영”한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사회는 남녀, 출신, 직업 등으로 철저히 구분된다. 이 모든 계층 요소를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입는 단 한 벌의 옷에 새긴다. 유일신(욜라)을 섬기니 비판 따위는 당연히 금지된다. ‘비판하기’의 전제조건인 자유와 사고(思考)도 금지된다.

세상 어디에나 반항아는 있는 법. 결핵에 걸려 우아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방출된 아티는 ‘사고하기’를 시작하고 마침내 신도 “자유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멀쩡한 사람도 중병이 걸릴 것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아티는, 환자나 노약자 다수가 죽어나가는 순례 여정에서 고고학자 나스를 만난다. 아비스탄 건국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새 발굴지를 조사하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나스는 맞은편에 앉은 아티에게 무심결에 발굴지의 비밀을 말해버리고 만다. 그 마을은 “구성원들이 각자 자유의지에 따라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실험한 공동체”였다는 것을.

고향 코드사바드로 살아 돌아간 아티는 ‘욜라의 축복’의 상징이 되고, 이전보다 더 좋은 직업을 얻고 일상에 적응하며 점차 이 비밀을 잊는다. 안락함도 잠시, 코드사바드의 바깥 ‘격리구역’을 몰래 나간 그는 그곳 후르인(자유인이라는 뜻)들이 자신들과 다른 가치관으로 “온통 무질서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과 다른 언어를 가진 그들을 보며 “종교와 언어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가?”가 궁금해진 그는 똑같은 호기심을 가진 코아를 만나고, 그 사이 대성전 이전 건립된 마을은 ‘기적의 마을’로 둔갑해 일반에 공표된다. 이들은 진실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순례 외에 이동이 금지된 아비스탄에서 각종 위조 서류를 챙겨 떠난 그들은 장사꾼 토즈를 만나고, 그에게서 나스의 소식과 ‘기적의 마을’의 비밀을 듣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일시적 평화를 찾은 아비스탄에서 아티는 외친다. “국경 너머에서 다른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욜라부터 형제회, 부르니캅(여성 옷을 칭하는 소설 속 조어) 등 이슬람교를 연상시키는 은유가 난무하는 소설은 알제리 출신이라는 작가 이력과 발표 시기 같은, 콘텍스트적인 요소가 맞물리며, ‘유럽 편의적 시선’으로 해석됐다. 극단적 무슬림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세계 만방에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2015년에 발표돼 다분히 이슬람 풍자소설로 읽힌다. 이런 맥락을 그대로 갖다 쓴 출판사의 마케팅 방법이 이 책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유럽에서 ‘핫’한 정치 소설을 읽어두겠다는 지적 허영심만으로는 초반 ‘세계의 문법’을 익혀야 하는 길고 지루한 독서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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