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표적 우경 소설… 동명영화엔 아베도 열광
전쟁 비판한 듯 보이지만 日 집권층 의식 대변
지난해 6월 아사히신문에 ‘우경 엔타메 소설 열풍’을 보도하는 기사가 났다. ‘우경 엔타메’는 일본 소설가 이시다 이라가 만든 단어로, 애국심을 자극하는 대중소설이라는 의미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이런 소설들이 일본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은 이유에 대해 신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문화의 우경화 및 경기침체로 누적된 불만의 배출 기능이라고 분석했다.
우경 엔타메 소설의 선두 격인 ‘영원의 제로’(펭귄카페)가 국내 번역됐다. 작가이자 일본 NHK방송의 경영위원인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의 데뷔작 ‘영원의 제로’는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를 다룬 소설로, 2006년 발매된 후 지난해 말까지 일본에서 450만부나 팔려나갔다. 2013년에는 영화로 제작돼 7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햐쿠타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아베 총리는 지난해 말 이 영화를 관람한 뒤 “감동적”이라는 소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가미카제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비난 여론도 뜨겁다. AFP통신은 생존 가미카제 대원의 말을 인용해 “가미카제를 미화하려는 시도는 미친 짓” “당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소설은 고시를 준비하는 평범한 청년이 2차대전에서 가미카제 공격으로 사망한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쟁을 먼 나라 일처럼 여겨온 청년은 “가미카제는 9ㆍ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정말로 광신적인 애국주의자들, 국가에 세뇌된 전쟁 병기에 불과했을까. 청년의 의문은 할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치렀던 전우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풀려나간다. “대본영 참모들의 작전은 그야말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였지요. 처음부터 적 병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정찰도 해보지 않고 제멋대로 추산하고 판단해서 일천도 안 되는 병력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그래서 안 되니까 이번에는 오천이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발상. 이건 절대로 취해서는 안 될 전법입니다.”
작가는 참전용사들의 입을 빌어 일본 군사령부의 안일한 전술과 인명경시 사상,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일본의 엘리트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2차대전 최고의 전투기로 불렸던 제로센은 국가에 대한 작가의 애증을 투영하는 상징물이다. “여덟 시간이나 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전투기라고 생각해. 그러나…우리는 기계가 아니야. 산 인간이지. 비행기를 만든 사람은 이 비행기에 사람이 탄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을 것이야.”
언뜻 전쟁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그러나 가미카제 대원들이 속내를 털어 놓는 장면에서 숨겨진 면모를 드러낸다. “왜 특공을 받아들였냐”는 질문에 한 퇴역 군인은 대답한다. “뭔가를 미화하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죽음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기쁘게 목숨을 바치리라 생각했지요.”
전쟁 역사상 최악의 전술 중 하나로 꼽히는 가미카제에 대해 작가는 ‘젊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군 최고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의 마음만은 숭고한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듯 하다. 역자인 양억관 씨는 “(가미카제 대원들의 죽음이) 권력층에 의한 타살인지, 애국심의 발로인지, 두 개의 관점 중 작가는 후자에 치우친 듯 하다”며 “이는 전쟁 주체의 논리와 똑 같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의 노골적 우경화로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영원의 제로’는 일본 집권층 사상의 밑바닥을 비추는 거울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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