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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진
논설실장

등록 : 2018.03.07 17:22
수정 : 2018.03.28 16:27

[황상진 칼럼] 김정은의 독법(讀法)으로 북핵 보기

등록 : 2018.03.07 17:22
수정 : 2018.03.28 16:27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듯 다른 김정은

한미, 한반도 위기 근본해법 찾으려면

김정은 위치, 관점에서도 북핵 바라봐야

한반도 문제가 전기를 맞고 있다. 남북 간 해빙 분위기가 완연하고, 북미회담 가능성도 점쳐진다.

북미 간 강경 대결 구도를 감안하면 변화의 속도와 내용이 예상을 뛰어넘는다.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이 떠올랐다.그로서는 남북문제 해결 주도 이미지를 부각하며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는 실익을 챙길 절호의 기회다. 파격적인 대북 특사단 접견, 여동생을 특사로 보내는 과감함에서 격식보다 내용, 명분이나 자존심보다 실리를 우선하는 성향이 엿보인다. 김정일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이다.

사실 우리나 미국이나 김 위원장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2011년 12월 집권 이후 폭압ㆍ공포 정치와 핵 실험, 미사일 도발에 가려서 그의 실제 국가운영 스타일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는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요소와 제도들이 대거 도입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장마당(시장)은 468개로, 김 위원장 집권 직전인 2010년(200개)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각종 상업활동과 이권사업이 활발해지고, 민간투자도 법으로 허용됐으며, 주택소유도 가능해졌다. 김 위원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2013년 그는 ‘경제ㆍ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주창했다. 경제를 국방보다 앞세운 것은 처음이었다. 북한 현실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진단이자 처방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그가 핵무기 완성 후 일반 국방비를 축소해 남는 예산을 경제에 쓰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 문제에 접근해볼 수 있다. 현재의 대화 국면은 분명 대북 압박과 제재의 효과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야심차게 시작한 시장경제정책 추진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것이고 이를 회복시킬 필요성이 커졌다. 이 지점에서 이번에 북한이 제시한 비핵화 전제조건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다. ‘‘군사적 위협 해소’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비핵화 조건은 과거 북미협상이나 6자 회담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이번에도 핵을 미끼로 제재 완화나 해제,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 위기 국면을 모면한 뒤 핵무력을 완성시키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각이 엄존한다. 북한의 과거 반복된 행태로 신뢰가 바닥난 현 상황을 감안하면 타당한 의문 제기다. 또 향후 남북ㆍ북미 대화 과정에서 늘 경계해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표현, 같은 전제조건이라도 그 발언이나 약속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이 김정일과 아예 다를 것이라거나, 똑같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거나 예단하기엔 이르다. 다만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체제 안전 보장’의 구체적 이행 요구, 이를테면 주한미군 철수 같은 조건의 세부 내용이 과거 김정일 때의 그것과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본다. 김정일과 달리 해외생활을 통해 서구사회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축적한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매진해온 북한경제의 자본주의식 발전 같은 실용주의적 노선을 계속 추구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집권한지 6년여가 지나서야 우리측 고위 인사가 처음 대화를 나눴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 위원장의 책임 있는 대리인을 접촉해본 적이 없다. 이제 막 김 위원장의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렸다는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도 미국도 김 위원장이 머릿속에 그리는 북한의 미래, 한반도의 미래를 인내심을 갖고 파악해 가야 한다. 과거에 너무 얽매이면 신뢰는 싹트지 않는다. 우리나 미국 모두 비핵화의 전제조건은 바뀔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로 대화 과정에서 인내하지 않으면 판은 깨진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가깝게는 김정일 시대의 관점에서부터 벗어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김 위원장의 독법(讀法)에 따라 북핵 위기 국면을 바라보고 접근해가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황상진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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