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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안보는 보수’라고?

입력
2017.02.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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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ㆍ종북 프레임에 갇힌 태극기 집회

보수도 한반도 안보 불안 초래에 책임

기울어진 한미관계 균형추 회복해야

김성칠 선생(1913~51년)이 쓴 ‘역사 앞에서’(창비刊)는 사적인 일기집이지만 해방공간의 사회사이자 한국전쟁의 실체를 보여 주는 역사서로도 읽힌다. 당시 시대상이 역사학자의 냉철한 시각으로 꼼꼼히 기록돼 있다. 그는 좌우에 치우치지 않은 지식인이었다. 서슬 퍼렇던 우익단체의 강연 요청을 거부했고, 좌익 지식인을 향해선 소아병적 경향과 독선주의를 질타했다. 누구나 생존을 위해 어느 쪽이 승세인가 기웃거리던 시절, 그처럼 자기 양심을 지키며 살아 가기는 쉽지 않았다. 일반 국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만일 소련에 붙었으면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꼴 났을 텐데, 다행히 미국에 붙어서 이만큼 먹고 산다.” 처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얘기다. 그는 해방 직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다. 당시 자동차는 미제 아니면 소련제였다. 미제가 훨씬 튼튼하고 성능도 좋았다. 그는 미국의 힘을 직감했다. 더욱이 미국은 친일관료를 이용해 대한민국을 만든 최강국이었다. 해방정국 혼란 속에서 ‘빨갱이’ 낙인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도 목도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미국에 대한 신앙은 더욱 굳건해졌다. 미국은 생명과 재산을 지켜 준 은인이자 구원자였다. 종전 이후에도 반공 방파제인 남한에 군사적ㆍ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친미와 반공은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니 태극기와 성조기는 동급이다. 태극기 집회에서 성조기를 함께 흔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소설가 김훈이 태극기 집회에 다녀온 느낌을 토로했다. 올해 70세인 그 또래가 집회 주축이다. 그는 거기서 60~70년 전 겪었던 ‘기아와 적화(赤化)에 대한 공포감’을 다시 봤다고 말한다. “집회에 나온 태극기와 성조기, 십자가 이것은 내가 어렸을 적 전개했던 반공의 패턴과 똑같았다. 갑질의 유구한 전통이다. 태극기와 성조기와 십자가와 반공은 내가 어렸을 적에 우파와 결탁이 됐다. 그것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적화 공포감은 권력자에게 협조할 가능성도 높인다. 기실 DJ정부 햇볕정책은 원조보수 노태우에서 비롯됐다. 그는 북한을 적이 아닌 동반자로 규정한 첫 대통령이다. 보수에겐 충격이었으나 반발이 오래 가진 않았다. 그가 만든 남북기본합의서는 대북포용정책의 밑그림이 됐다. YS는 취임 연설에서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DJㆍ참여정부 또한 분단 상처를 치유하며 상호 신뢰를 쌓아 가는 대북정책을 이어 갔다. MB정부 들어 한미관계 균형추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대북정책 흐름이 확 바뀌었다. 북한 붕괴론을 공공연히 떠들며 적대적 압박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박근혜정부도 남북관계를 보수층의 반북심리 자극 등 정치적으로만 이용했다.

노인들 공포감은 여전해도 세상은 많이 변했다. 미국은 나라가 생길 때부터 우리와 엮인 유일한 동맹국이다. 70여년 한미관계를 특징 짓는 표현인 ‘한미동맹’이 우리 안보와 경제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민주화와 경제성장은 통일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꿔 놓았다. 불평등한 한미동맹이 아닌 국익 중심의 자주적 균형외교, 긴장과 대립이 아닌 평화가 공존하는 남북관계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선 때면 ‘종북 프레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미사일 발사와 같은 북한 위협은 크든 작든 유권자들의 안보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여야 모두 ‘안보는 보수’라고 외치는 까닭이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지 보수는 야권 대선주자의 안보관이 불안하다고 끊임없이 공격한다. 한반도 긴장을 초래한 주범이 보수임에도 반성할 줄을 모른다. 우리 운명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달렸다. 북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평화도 생존도 없다. 노태우정부의 포용정책은 그저 주어진 게 아니다. 미국에 특사를 보내 설득을 거듭하며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노력한 덕분이다. 남북관계를 푸는 첫걸음은 보수정권에서 심하게 기울어진 한미 관계의 균형추를 회복하는 것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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