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몸 아프면 보약을, 마음 아프면 책을!”

입력
2017.04.28 04:40
0 0
경주 황오동 동네책방 사랑방서재의 주인장들. 왼쪽부터 고지영, 이상우, 이지훈, 강희은씨. 고지영, 이지훈씨는 음악가 부부, 이상우, 강희은씨는 동네 한의원 부부다.
경주 황오동 동네책방 사랑방서재의 주인장들. 왼쪽부터 고지영, 이상우, 이지훈, 강희은씨. 고지영, 이지훈씨는 음악가 부부, 이상우, 강희은씨는 동네 한의원 부부다.

동네 책방 사랑방서재는 경주 황오동의 오래된 주택가 가정집에 있습니다. 어느 날 한의원에 찾아온 손님과 의기투합하여 열게 된 가정식 서점으로 음악가 부부와 한의사 가족이 공동 운영하는 책방입니다. 동네에 서점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동안 책방이 없었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장조사를 할수록 사업성은 보이지 않았고 임대료도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책방을 열고, 각자의 생업에 충실히 하면서 서점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돈도 안 되는데 책방을 왜 하나?”

서점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많이 물었던 질문입니다. 고미숙 작가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에서 돈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돈의 속성을 교환, 계약으로 알고 있지만, 저자는 이것을 넘어서 ‘증여’와 ‘순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혼자 있다면 돈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공동체를 이룰 때에야 비로소 돈이 생겨나고, 제대로 된 공동체 구성원은 돈을 제대로 쓸 줄 압니다. 그래서 저자는 돈을 많이 모을 줄 아는 사람이 돈의 달인이 아니라 돈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돈의 달인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자신처럼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곳의 젊은이들도 공동체 안에서 돈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익히고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본래 돈의 속성은 순환을 위한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흐르는 돈이 구성원들의 몸을 기르고 정신을 키우는 모습을 두 책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간 사람들의 책은 뒤에 오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의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수익성을 따지자면 서점은 예전에 접었을 일이지만, 우리는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을 만들기 위해 책방을 시작했습니다. 전문 서점인이 아닌 네 명의 운영자가 취향에 따라 선별하는 책은 우리의 서재에 가까울 것이기에 책방 이름도 ‘사랑방서재’라고 지은 것입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더 많은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써의 책과,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도구로써의 책을 생각합니다. 니나 게오르게의 장편소설 ‘종이약국’에서 페르뒤는 파리 센강에 정착한 배 위에서 수상 서점인 종이약국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기 작가인 조당에게 자신의 책 판매 방식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책은 의사인 동시에 약이기도 해요.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죠. 손님이 안고 있는 고통에 맞는 적절한 소설을 소개하는 것, 바로 내가 책을 파는 방식입니다.”

사랑방서재가 권하는 책. 아래 노트는 북스테이 방문자가 필사한 노트다.
사랑방서재가 권하는 책. 아래 노트는 북스테이 방문자가 필사한 노트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발행ㆍ264쪽ㆍ1만3,500원

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ㆍ김인순 옮김

박가 발행ㆍ448쪽ㆍ1만3,500원

마음세탁소

황웅근 지음

정신세계사 발행ㆍ360쪽ㆍ1만5,000원

조당의 책을 사러 온 숙녀에게 다른 책을 권하는 부분이 저는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손님에게는 혼자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방은 너무 밝지 않아야 하고 손님에게 친구가 될 고양이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이 책을 천천히 읽으세요. 책을 읽는 틈틈이 푹 쉴 수 있도록 말이죠. 손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어쩌면 눈물이 치솟을 수도 있어요. 자신 때문에, 지난 세월 때문에. 하지만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겁니다. 그 남자가 손님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아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지금 죽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자신을 다시 좋아하게 될 겁니다. 자신을 추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겁니다.”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종이약국’을 읽기 전에도 환자분들에게 책을 권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한의원에는 몸이 아픈 분이 오시지만 몸이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이 변해야 합니다. 행동이 변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변해야 하고 생각이 변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책을 권할 때가 많은데, 가장 많이 효과를 본 책은 황웅근 한의사가 지은 ‘마음세탁소’입니다. 하루에 20분씩 50일 동안 읽을 수 있게 날짜 별로 구성되어 있지만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하루 20분씩 필사를 권합니다.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내 것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워서 읊을 수 있을 때가 되어야 1단계가 이루어진 것이고, 외운 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책에서는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가 겪는 문제 상황들을 보여주고 동서양의 현인들이 말한 지혜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줍니다.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착각에 빠지는 것은 사물의 양면(兩面)과 이면(裏面)을 살피지 않고 단면과 표면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가 느끼는 실체는 본래의 실체와 다르게 된다. 착각은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가장 흔한 착각은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착각이다. 남들이 사치스럽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남들이 여행 가니까 나도 여행을 가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청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스스로 청빈하게 살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또한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열심히 자기수양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왜 스스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단 말인가.”

서점을 하면서 많은 즐거운 일들이 생겼습니다. 사랑방서재가 생긴 이후에 작은 서점들과도 좋은 친구가 되었고, 북스테이를 하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더 많은 책을 알게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이를 몰라주어도 섭섭하지 않을 것인데 이렇게 신문을 통해 알릴 기회까지 얻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멀리서 마음 맞는 벗이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1장의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의미를 우리는 서점을 운영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습니까!

경주 사랑방서재 이상우 한의사ㆍ북스테이네트워크(bookstaynetwork.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