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성 기자

등록 : 2017.12.16 04:40

[나를 키운 8할은] 강상중 "재일한국인 1세 아버지, 어떤 불운에도 굴하지 않으셨다"

강상중 교수의 '부모님'

등록 : 2017.12.16 04:40

말기암 아픔 견디지 못하고

"아프구나" 단 한번 약한 모습

아버지의 침묵에서 인내 배우고

한국어도 일본어도 까막눈이었지만

한국의 전통ㆍ풍습 고집스레 지켜

어머니에게선 삶의 지혜 깨우쳐

'자이니치'. 이 단어가 지닌 무게감이 곧 강상중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의 일부다.” 내가 누구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이야기할 때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다.

내가 맨 처음 만난 이들, 나의 뼈가 되고 피가 된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다. 지금은 경남 마산시의 일부가 된, 그 옛날 가난하고 쓸쓸한 마을 소작인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아직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 나고야를 거쳐 규슈 구마모토에 자리를 잡았다.해방이 되기 직전이었다. 해방 후에도 히로시마에 견줄 만한 군사 도시인 구마모토에 남아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향의 땅에서 지냈고 결국에는 그 땅에 뼈를 묻었다.

많은 ‘재일한국인 1세’가 그러하듯 과거 '제국'이었던 일본에서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험난한 고생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인내심이 남달랐고 어떠한 불운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굳세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금욕적인 데다 불평불만을 입에 올리는 일이 없었고 검소한 생활을 고집했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말기 암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단 한 번, “아프구나”라며 약한 모습을 보이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망국의 백성으로 이향의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결코 푸념하지 않았으며, 또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았던 아버지의 생애는 그저 묵묵히 살아온 ‘인고’의 삶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침묵에서 인내를 배웠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아버지보다 덜 운명적이랴. 진해의 화창한 날씨와 바다 내음 속에서 자란 어머니는 어린 소녀 티가 가시기도 전에 고향을 뒤로하고 아버지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왔다. 한국의 토속적인 생활 풍습과 전통 관례가 몸에 밴 어머니는 이국 땅에서도 고집스럽게 고향의 풍속과 먹거리의 전통을 지켰다. 모국어인 한국어도, 일본어도 읽고 쓰지 못한 어머니였으니 고향의 관례를 지키는 것만이 당신을 지탱하는 정체성의 근간이었으리라. 나는 그 어떤 과학적인 지식이나 정보보다 삶의 지혜야말로 인간을 살린다는 것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60대 중반의 초로가 되어 돌이켜보니 아버지와 어머니야말로 나의 피와 뼈를 이룬 운명 같은 존재였음을 새삼 실감한다.

부모 이외의 또 다른 이들을 들자면,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인 학창 시절에 운 좋게도 진정한 ‘스승’인 은사를 만났고 둘도 없는 ‘마음의 친구’를 얻었다. 정치학자였던 대학 시절의 은사는 일본의 고도성장이 끝날 무렵 기존의 환경윤리학과 리버럴리즘의 한계를 넘어선 정치철학을 만드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병마로 쓰러졌다. 그분을 통해 학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 기초한 정치와 사회의 구축이라는 커다란 문명사적 과제를 배웠다.

은사보다 내게 더 큰 영향을 준 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재일한국인 2세로 살아가는 처지였던 ‘마음의 친구’였다. 그를 통해 ‘자이니치(在日)’로 산다는 것이 그저 일본 사회의 소수자(minority)로서의 삶일 뿐만 아니라, 분단된 조국과의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경계를 넘나드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도 ‘무(無)’에 가까운 존재였으리라.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삶과 뜻은 내 안에 살아 있다. 아니, 나의 피와 뼈 그리고 내 근육과 피부에 그들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들이 내게 남기고 간 것들, 그들의 간절한 바람,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살았다는 증거를 다음 시대에 전해주는 것이 내게 남겨진 책무임을 나는 알고 있다. 다음 세상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열심히 살았구나. 고생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내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번역 노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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