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제정된 맨부커상의 자매상이다. 맨부커상은 영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을 선정한다. 2005년 신설된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 부문은 원작의 언어와 상관 없이 영어로 널리 읽히는 작가의 공을 기리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올해부터는 번역상의 의미도 포함했다. 영어로 번역, 영국에서 출간된 작품에 상을 수여한다. 그 첫 해에 한 작가가 상을 받아 의미가 크다.
특히 노벨상 수상작가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과 중국 문단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옌렌커 등을 제치고 이제 막 영미권에 소개되기 시작한 그녀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채식주의자'의 영국 진출 과정
'채식주의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대 SOAS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데보라 스미스(28)의 번역으로 지난해 1월 영국 포르토벨로(Portobello)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앞서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에서 2010년 출간된 데 이어 스페인어, 중국, 포르투갈, 폴란드에서 차례로 출간된 후 영미권 진출을 노렸다.
스미스가 2013년 런던 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의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발판이 만들어졌다. 영국의 대표 문예지 '그란타(Granta)'를 인수한 포르토벨로 출판사 편집자에게 '채식주의자' 영역 샘플과 함께 홍보 자료를 건네준 것이 인연이 됐다.
이듬해 2014 런던 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한 작가가 참가, 런던과 에든버러 등에서 문학에서 영국 독자의 반응을 확인한 출판사는 '채식주의자'의 출간을 확정했다.
이후 출판사는 '그란타'의 네트워크를 활용, 현지 문단과 독자를 대상으로 사전 마케팅에 총력을 가했다. 2월 호가스(Hogarth) 출판사에서 미국 판을 출간한 직후, 가디언과 뉴요커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동시에 우아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이라는 서평이 실렸다.
'채식주의자'는 선집 등에 단편이 수록됐던 것을 제외하면, 영어로 번역돼 본격적으로 소개된 한 작가의 사실상 첫 작품이다.
이전에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을 받아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돼 6개 언어권에서 8건이 출간된 바 있다. 현재 4개 언어권 5건이 번역, 출간 준비 중이다.
특히 2014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바람이 분다, 가라'는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서 "격정적이면서 아련한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문체와 시각의 변화를 다루는 능수능란함을 펼쳐보인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한 작가는 2002년 '한-영 젊은 작가 문학 세미나'를 시작으로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독일 라이프치히 도서전, 영국 런던 도서전, 도쿄 도서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서전 등에서의 문학 교류 행사를 통해 해외 독자들과 소통해왔다.
특히 작년 여름에는 영국문학번역센터(BCLT)와 노리치 작가센터가 협력·개설한 번역 워크숍에 참여, '채식주의자' 번역가인 스미스 그리고 번역가 지망생들과 함께 자신의 단편 '에우로파'를 번역했다. 한 작가는 당시 "느리게, 더 느리게 보다 더 나은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번역이 주효했다
'채식주의자'의 성공은 능력 있는 번역자를 만났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스미스는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운 지 7년에 불과하다. 2009년 케임브리지 대학 영문학 전공 후 비로소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접했다.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신비스럽고, 그래서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 스미스는 런던대학교 SOAS의 한국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한 영국문화원 등과 공동으로 주관한 2014 런던 주빈국 행사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문학 번역가로서의 경력을 쌓게 됐다.
'채식주의자' 뿐만 아니라 그녀가 번역해 올해 출간된 한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도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그녀는 2013년부터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배수아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2014년 말 한국문학번역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미국 유명 출판 관계자를 만나, 오픈 레터(Open Letter Books)에서 올해 10월과 2018년 초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올빼미의 없음', 딥벨럼(Deep Bellum Publishing)에서 내년 초에 '서울의 낮은 언덕'을 출간하기로 했다.
스미스는 올해 가을 배 작가와 함께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 최대 번역가 모임인 미국 문학번역가 협회(ALTA)의 연례회의에 파견된다. 뉴욕 등지에서 낭독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또 현재 그녀는 박사과정을 끝낸 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언어로 쓰인 소설을 영역으로 출간하는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를 설립, 연간 대략 네 편의 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 출판사는 한국문학번역원과 업무협약을 체결, 한국문학 3종을 시리즈로 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KL매니지먼트의 노력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주목 받는데 한국문학번역원과 이구용 대표가 이끄는 에이전시 KL매니지먼트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문학번역원은 한 작가의 저작권을 보유한 에이전시 KL 매니지먼트 등 민간기구 에이전시와 협력해왔다. 에이전시에 소속된 작가 23명 대한 267건의 번역을 지원해왔다. 그 중 KL매니지먼트 소속 작가 15인에 대해서는 132건의 번역을 지원한했다.
또 출판사나 에이전시 등에 초록샘플 번역을 3500건 넘게 지원해오며 번역 샘플을 통해 해외 출판사들이 한국문학 작품 출간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왔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는 국내 유일의 전문 문학번역가 양성 기관이다. 매해 영, 불, 독, 서, 노어권에서 한국문학 번역가를 지망하는 원어민 학생들을 초청, 2년의 정규과정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2002년부터 배출된 졸업생 500여 명 중 벌써 몇몇은 번역가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번역 아카데미 출신인 이르마 시안자 힐 야네스가 스페인어로 번역한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멕시코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역시 아카데미 출신인 소라 킴 러셀(Sora Kim-Russell)이 영어로 번역한 배수아의 '철수'는 미국 펜(PEN) 번역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 프랑스어권 졸업생들의 번역실습 결과물을 모아 출판한 한국 현대 단편 모음집 '택시 운전기사의 야상곡'은 노벨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의 상찬을 받기도 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앞으로 번역아카데미를 대학원대학교로 전환, 한국문학 전문번역가 육성사업의 수준을 높이고 범위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한국문학 작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좋은 번역가의 양성과 확보"라며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이 번역가에게 작가와 동일한 상금과 대우를 하는 것은 그만큼 번역이 어렵고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모옌, 오르한 파묵 등 아시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가독성이 뛰어난 원어민 전담 번역가들을 통해 작품성을 획득하여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며 따라서 한국문학 전문가 양성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번 한 작가의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이 한국문학 해외진출 전반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문학작품 발굴에 박차를 가한다.
올해 연말부터는 배 작가의 미국 연속 출간이 시작되고, 내년 초에는 미국 저명 출판사인 하코트(Houghton Mifflin Harcourt)에서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레이울프(Graywolf Press) 출판사에서 한유주의 '불가능한 동화'의 출간이 예정됐다. 또 번역원에서 올해 펭귄 클래식 시리즈에서 '홍길동전'이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고전, SF, 추리소설 등 해외 진출하는 한국 문학 작품 장르의 저변을 확대해나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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