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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등록 : 2016.10.07 13:43

[장정일 칼럼] 흑인들은 엎드려도 총에 맞는다

등록 : 2016.10.07 13:43

지난 9월 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엎드려도 총에 맞는다”고 맞받아쳤다.

두테르테가 욕설을 퍼부은 것은 과했지만, 미국 정부는 반박이 쉽지 않다. 애초에 두테르테는 2014년 8월 9일,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에 사살된 미주리 주 ‘퍼거슨 사태’ 등을 염두에 두었을 테지만, 그 발언 직후 오클라호마 주 털사(9월 16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9월 20일)에서 비무장 흑인이 연이어 경찰의 총에 숨졌다. 한국일보는 9월 23, 24, 26일, 두 사건을 연속 보도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이 재선까지 된 마당에 흑인 인권이 이토록 열악한 것을 따지자면,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노예해방을 선언했던 링컨의 북부 연맹은 남부 연합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것은 이탈하려는 남부 연합에 거둔 절반의 승리에 불과했다. 전쟁의 당사자는 23개 주로 결성된 북부 연맹과 11개 주로 뭉친 남부 연합의 백인들이었지 흑인이 아니었다. 약 12년을 끌었던 전후 청산과 남부 재건 역시 흑인을 빼놓고 진행되었고, 노예해방 세력이었던 공화당 정부는 남부의 주 정부가 1871년에 제정된 민권법과 수정 헌법 제14ㆍ15조를 무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백인끼리의 대타협 결과, 남부에서는 흑인을 합법적으로 차별할 수 있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이 생겼다.

짐 크로 법에 따른 버스 이용 규칙은 흑인들에게 불평등했고 굴욕스러웠다. 우선 흑인 승객은 앞문으로 올라와 버스요금을 낸 뒤, 하차한 다음 뒷문으로 다시 타야 했다. 서른여섯 개 좌석 가운데 흑인은 버스 뒤편의 좌석 열 개에만 앉을 수 있었고, 앞쪽에 빈 좌석이 있어도 앉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백인 좌석이 다 찰 경우 흑인들은 자기 좌석마저 백인에게 양보해야 했다. 백인들의 자가용 소유율이 높아 몽고메리 시의 버스 이용객 66%가 흑인이었는데도 그랬다.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시작된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짐 크로 법을 무너트렸다. 흑인 민권운동의 시발이 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이 운동의 주역이었던 로자 파크스가 짐 해스킨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로자 파크스 - 나의 이야기’(문예춘추사,2012)에 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속 학교를 공격하고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의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공격하는 것을 야만이라고 성토한다. 그러나 기독교를 신봉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제2의 남북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흑인 민권운동 기간, 수시로 폭탄을 투척한 곳도 흑인 학교와 교회였다. 이런 야만이 1963년까지 횡행했다.

“그 당시 백인들은 흑인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또 백인들은 “몽고메리 흑인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고일어날 만큼 용기가 있다고 믿지 않았다. 흑인들이 조금이라도 집단행동을 보이려 하면 늘 외부세력의 개입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몽고메리 시의 흑인 민권운동가들은 뉴욕에 본부를 둔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배제하고, 이 고장에서 사역하고 있던 신임 목사 마틴 루터 킹을 내세웠다.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에 피살되고 나서 보름 동안 항의 시위가 있었지만, 과잉 대응으로 사람을 죽인 경찰에게는 아무 일이 없었다. 밤늦게까지 기소 발표를 기다렸던 열다섯 살짜리 아들은 아무도 처벌되지 않는다는 텔레비전 보도가 끝나자 자기 방으로 힘없이 돌아갔다. 타네하시 코츠는 아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세상과 나 사이’(열린책들,2016)를 썼다.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 차별은 종교ㆍ이념ㆍ신분ㆍ능력과 같은 불가시적 원인이 아니라, 오로지 ‘검은 몸’ 때문에 생겨난다. 단지 그런 ‘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의 의심을 받고 사격의 목표가 되는 미국 흑인의 처지를 우리로서는 도저히 추체험하기 힘들다. 흑인들은 엎드려도 총에 맞는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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