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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인과론으로 보는 특검 수사

입력
2017.01.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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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조사 정경유착 낡은 관행 바꿀 기회

총수 유고 기업ㆍ경제에 악영향 근거 없어

특검 조사와 재판 선입견 걷고 지켜봐야

초기불교 경전인 ‘중아함(中阿含)’에 앵무마납이라는 바라문(승려)과 붓다의 이런 대화가 있다. 앵무마납이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인연으로 중생들 중에는 지위가 서로 다르고, 목숨이 길고 짧으며, 병이 있거나 없고, 재물이 많거나 적은 것입니까”. 붓다의 대답은 이렇다. “자기가 행한 업 때문이다. 지은 업에 따라 갚음을 받으며 업으로 인해 높고 낮음이 생긴다.”

붓다는 그 예로 수명이 짧거나 병이 많은 사람은 다른 짐승을 죽이거나 못살게 굴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비천한 집에서 태어나는 것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지혜로운 이를 찾아가 참다운 진리를 배우지 않고 죄가 되는 것과 아닌 것을 묻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사건을 보며 선한 행동은 선한 보답을 받고 악행은 벌을 부른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특검이 ‘뇌물죄’ 수사로 옥죄고 있는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경영주는 선대도 정치권 비자금 조성이나 경영권 승계 의혹 등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터라 ‘업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최순실도, 대통령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특검의 조사와 이어질 재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다.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지금 할 일은 그 과정을 편견 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최순실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한결같이 공분하던 언론이 이 사건의 진실을 해명할 기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삼성 조사에서는 심하게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이 부회장 구속 수사 방침에 비판적인 일부 국내 언론은 국정농단을 파헤치려고 출범한 특검이 왜 피해자라고 해도 좋을 기업인을 구속까지 해서 수사하느냐, 한국 대표 기업의 경영이 휘청거려 그 파장이 국가경제에까지 미치면 어쩔 거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삼성의 방어 논리이기도 한 ‘피해자’ 주장은 결국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기업과 정치권력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하는 폐습이 근절되지 않은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해외 언론이 “한국의 추문으로 정경유착 드러나다”(로이터)“한국의 정치집단과 기업 엘리트 사이의 잘 구축된 유착이 이번 사건으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뉴욕타임스) “재벌 개혁을 위한 영장”(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시각으로 이 사건을 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기업인 조사가 그 기업에,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것도 기우에 가까운 이야기로 들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이건희 회장이 불구속 기소되고 총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도 순이익, 매출액, 영업이익 등의 지표에 미친 영향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특검이 이 부회장을 조사한 12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한 16일에는 떨어졌지만 이후 며칠째 계속 올랐다.

국가경제 운운하기보다 “삼성은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총수 한 명 구속으로 휘청거리지 않는다”는 국내 연기금의 진단이 더 사실에 부합한다. 단기 투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투명성이 개선되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으로 삼성을 비롯한 국내 재벌의 정경유착 관행에 지각 변동이라도 일어난다면 그보다 더 국가경제에 도움될 일이 있겠는가.

‘인과’를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자업자득’으로만 아는 건 뜻풀이가 너무 좁다. 불교에서 ‘인과’는 ‘연기(緣起)’처럼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거기서 결과가 생겨난다는 의미다. 이런 혜안으로 담담하게 삼성 조사의 결과를 지켜봤으면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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