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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어느 건방진 불량 학생의 고백

입력
2016.05.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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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다. 그림 그려오는 숙제를 해서 책상 위에 놓으니 담임선생님이 누가 그렸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내가 그렸으니 ‘제가요’ 라고 대답하니 선생님은 다짜고짜 뺨을 때리셨다. 그리고 나를 일어서라고 하더니 다른 학생들에게 이렇게 거짓말하는 사람은 혼이 난다고 강조하셨다. 이게 어른이 그린 그림이지 어떻게 어린아이가 그린 거냐 하시면서 또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면 지금보다 더 큰 벌을 줄 것이라고 협박을 하셨다. 하지만 그 후로 주눅이 들어서 다신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내 뺨을 때리든지 말든지 미술 시간에 주눅이 들었던 기억은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도 눈을 찌푸리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른 내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으셨다. 살림하면서도 그림을 포기한 적이 없는 어머니의 붓질을 어깨너머로 배운 것뿐 이었는데 말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이번에는 작문을 놓고 시비를 거셨다. 누가 대신 써준 게 틀림없다. 어디서 베꼈을 것이다. 읽지도 않는 책을 왜 읽은 척 하면서 잘난 척 하느냐. 하는 식의 인신공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읽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하거나, 남의 글을 베낀 적은 없었다. 아버지의 책장에 꽂힌 파스칼의 팡세,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모파상 헤밍웨이의 소설들, 한국 고전 소설 전집들을 읽어댔으니, 내 글에는 어설픈 어른 흉내가 있긴 했을 것 같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없는 글들이 불편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때쯤부터는 신문도 신나게 읽었다. 야한 연재소설부터 근엄하게 모든 사람을 꾸짖는 사설과 때론 광고문구들까지. 수업보다 훨씬 재미도 있었다. 한데 어느 날부터 신문이 이상해졌다. 광고가 있어야 할 자리가 전부 공란으로 변하는 등, 언뜻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른바 백지광고사태였다. 1970년대, 유신, 긴급조치 등등의 독재논리는 중학생의 눈에도 어설픈 억지였다. 마침 사회 시간에 유신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질문했다.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한국적이란 게 뭔가요? 독재하겠다는 거 아닌가요?’ 수업이 끝난 후, 담임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이제부터 학교에서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매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그 표정이 하도 근엄해 정말로 그때 이후 손을 들어 질문하거나 발표를 하지는 못했다. 고등학교에 가니 겉멋이 더 들어, 강의시간에도 보고 싶은 책을 더 많이 봤다. 공부하지 않으면 얼마나 등수가 떨어지는지 실험도 해 보고. 혼자 3개년 계획을 세워 1학년 때는 오페라, 연극, 영화, 미술 관람, 영어로 소설보기, 2학년 때는 거기에 수학 과학 과목 얹기를 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학교 성적은 별로였고, ‘네가 서울대에 들어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셨던 선생님도 계셨다. 승부근성이 발동해 고3때는 이부자리 한 번 깔지 않고 공부에 매달렸다. 내신으로 일찍부터 모든 것이 결정되는 요즘이라면,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갈 못된 학생이었다.

대학은 좀 근사할 줄 알았는데 유신과 10ㆍ26 사건 광주항쟁이 겹쳐서 사라진 학생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광주항쟁 기간의 끔찍한 사진들로 사제의 의리니, 캠퍼스의 낭만이니 하는 것을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성실하게 수업하시는 교수님도 계셨지만 낡은 노트북을 되풀이하시는 분도 계셨다. 책을 전체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학생들보다 족보만 달달 외울 때 성적이 더 잘 나오기도 했다. 이런 곳이 무슨 학문하는 대학이냐는 말을 하며 휴학계를 들고 다녔지만, 의과대학에 순응하지 못하는 내 능력부족이 더 문제였다.”

결코 착하지 않은 내 학창시절의 삽화들이다. 억울한 일로 뺨을 맞거나 어린 내가 생각하기엔 모욕적인 방식으로 꾸중을 들었던 당시에는 분명 상처였을 것 같은데, 오랜 시간이 지나니 그런 경험들도 나름대로 소중하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때론 오해도 지금은 삼켜야 할 때가 있다는 것.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등등. 살아가면서 정말 체득해야 할 진실들을 학교에서 미리 배운 점도 있는 것 같다. 반면에 학생들의 치기를 슬쩍 눈감아 주시는 따뜻한 선생님들이 더 많으셨기 때문에 그런 상황도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에는 학생들이 무섭다는 선생님들이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다. 사명감보다는 안정된 노후와 좋은 조건 때문에 교직을 선택한 이른바 있는 집 자녀분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어느 노 교사의 설명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육 역시 일종의 서비스 업종이 된 탓이 더 클 것이다. 내신에 사로잡혀 인성이 아닌 EBS 교재만 가르쳐야 하는 교육 현장에서 참 스승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교사들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착한 학생들이 그래도 우리의 희망이 아닐까 싶다.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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