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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겨울엔 쉬어도 괜찮겠지

입력
2017.02.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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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이고, 요 녀석아. 겨울에는 쉬어도 된단다. 우리네 사람들, 겨울에는 다 군불 땐 아랫목에 앉아서 고구마나 까먹으며 밤을 보내는 거다. 그건 나쁜 게 아닌 거다. 겨울인데, 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겠느냐. 어차피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한다. 내가 내 몸을 부려서 겨울 내내 일을 시킨들 땅에서는 아무 것도 크지 않고 내 몸만 힘들지 않겠냐. 그 찬바람을 왜 옴팡 맞고 있느냐. 겨울에는 방에 앉아라. 이불 덮고 앉아서 고구마나 까먹는 게 맞는 거다. 아무도 너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거니까 말이다. 게으른 게 아니라 쉬는 거다. 우리는 살자고, 한 번 재미나게 살아보자고 세상에 온 게 아니더냐. 그런데 네가 고되면 어쩌겠니. 고되어서 사는 게 즐겁지 않으면 어쩌겠니. 제 몸을 편하게 누이고 스스로 쉬게 하는 것이 맞는 거다. 그래서 봄이 오면, 따뜻한 날이 오면 다시 일어나 밭을 갈면 되는 거다. 요 녀석아, 그렇게 사는 거다. 슬프게 먹으면 무얼 먹어도 체하고 슬프게 웃으면 그건 웃는 게 아니다. 아이고, 요 녀석아.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구나.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 봄이 다 온다. 누가 막아 선다고 안 오는 게 아니다. 제비가 봄 데리고 온다. 괜찮다…. 어젯밤 어느 시인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다. 긴 겨울 밤을 혼자 걷는 기분이었다. 아랫목에 앉아 이불을 덮고 고구마를 까먹는 대신 나는 오늘 책상 앞에 앉았다. 북쪽으로 난 창문을 잠깐 망망히 쳐다보니 흐린 겨울은 여태 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제비가 날겠지. 부리 끝에 봄 조각 살짝 물고 창 밖을 슝 날아가겠지. 그때 씨 뿌리러 나가려면 지금은 조금 쉬어도 되겠지. 그렇겠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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