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테러 이후 급속히 확산된 반(反)난민 정서에 힘입어 지난 6일 프랑스 지방선거(1차 투표)에서 13개 레지옹(Regionㆍ프랑스 행정구역 가운데 가장 큰 단위로 우리의 도에 해당) 중 6곳에서 1위를 차지 파란을 일으켰던 극우정당 국민전선(FN). 이 승리로 당 대표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 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란 예측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르펜의 질주는 여기까지였다.
파리 테러 발생 한 달 만인 13일(현지시간) 진행된 지방선거 2차 투표 결과, 단 한 곳의 레지옹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AFP 등 외신들은 이날 투표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극우정당의 득세를 경계한 프랑스 표심이 1차 투표와 다른 결과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국민전선은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당 대표 시절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등 반(反)유대주의를 내세워 인종차별주의 정당으로 불렸다. 이후 마린 르펜이 지난 8월 아버지를 당에서 퇴출하면서까지 인종차별 노선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지만, 타 민족과 소수 인종에 대한 강경노선을 유지해 극우의 색깔은 여전하다. 1차 투표에서 국민전선이 제1당으로 나설 게 확실해지자 파리 테러 이후 급격히 보수화되는 프랑스 정치 지형도를 우려한 유권자들이 대거 마음을 바꾼 것이다.
르 피가로에 따르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 사회당이 5곳,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이 수도권 등 7곳의 레지옹에서 각각 승리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나머지 한 곳인 코르시카 레지옹에선 지역 소수당 정당이 승리했다. 르펜은 1차 투표와 달리 ‘완패’의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이다.
1차 투표 결과 어느 당도 과반 득표를 얻지 못한 탓에 13개 레지옹 모두에 대해 10% 이상 득표한 정당을 대상으로 이날 결선 투표가 진행됐고 전국 득표율 기준 사르코지의 공화당이 40%로 1위, 사회당이 30%, 국민전선이 28%로 뒤를 이었다. 각 레지옹 별로 득표율에 따라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의회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뽑게 되어 있는 만큼, 국민전선은 한 명의 단체장도 확보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마린 르펜 대표와 르펜의 조카딸 마리옹 마레샬 르펜 하원의원마저 자신들의 텃밭에서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르펜 대표는 국민전선의 지지 기반인 프랑스 북부 노르 파 드 칼래 피카르디 자치단체장 후보로 선거에 나섰지만 42.4%의 표를 얻는 데 그쳐 사르코지 전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자비에 베르트랑을 앞세운 공화당(57.6% 득표)에 무릎을 꿇었다. 마레샬 르펜 하원의원은 남부 프로방스 알프코트다쥐르에서 45.5% 득표에 그쳐 역시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시 니스 시장이 이끈 공화당(54.5% 득표)에 패했다.
제1당 대표를 꿈꿨다가 뜻밖의 패배를 마주한 르펜 대표는 이날 투표 결과에 대해 “아무도 우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라며 분루를 삼켰다. 출구조사발표 직후 지지자들 앞에서 패배를 인정한 그는 “국민전선의 아성인 북부와 남부 곳곳에서 우리가 집권 사회당을 위협하는 야당이란 사실을 보여준 선거였다”라며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든 프랑스인을 뭉치게 할 것이다”고 대선 레이스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1차 투표보다 크게 늘어난 투표율과 극우보수화에 대한 유권자의 반발 심리 덕분에 국민전선을 누른 우파 공화당과 집권 사회당은 승리를 자축하면서도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국민전선이 지난 2년 간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였고, 이번 2차 투표에서도 공화당과 사회당이 곳곳에서 전략적인 ‘단일화’를 이뤄 가까스로 우위를 점한 만큼 2017년 대선 정국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개표 후 “급진주의의 위험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극우정당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기도 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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