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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필리스 프로스트(9월 14일)

입력
2017.09.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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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데트 클로흐시가 쓴 필리스 프로스트 평전 표지.
버나데트 클로흐시가 쓴 필리스 프로스트 평전 표지.

필리스 프로스트(Phyllis Frost)는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는 성경 가르침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통해서만 영혼의 복락과 안식이 있다고 믿은 호주의 주부였다. 그는 특히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대변하고자 노력했고, 특히 누구도 관심 두지 않던 여성 재소자 인권과 수감시설 환경 개선 등을 위해 헌신했다.

1917년 9월 14일 멜버른 브라이튼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기독교 장로교 여학교를 거쳐 멜버른대에 진학했다. 당시 여성으로선 얻기 힘든 교육 기회였다. 그는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41년 결혼했고, 세 딸을 낳아 길렀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혜택과 안락한 삶에 보답하기로 했다. 각종 봉사활동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봉사자들이 대체로 기피하는 것들에 특히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성 재소자 인권과 수감환경 개선 사업이었다.

그는 여성 재소자 음식의 질 향상으로부터 갓 출산한 재소자가 아이와 함께 수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까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교정당국 및 주정부와 싸웠다. 전기 작가 버나데트 클로흐시(Bernadette Clohesy)가 쓴 평전 ‘Nothing like a Dame’에 따르면 프로스트는 “(싸울 때는) 단호하고 강력하고 무시무시해서, 남자들조차 두려움에 떨게 하는 여성”이었지만 “(평소에는) 악당 같기는커녕 누구에게나 다정해서 그와 함께 활동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게 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여장부였다.

빅토리아 주 총리이던 스티브 브랙스(Steve Bracks)에 따르면 프로스트가 생애 동안 가담한 봉사단체와 위원회만 무려 47개. 프로스트가 1968년 조직해 이끈 환경 단체 ‘The Keep Australia Beautiful Network (KAB)’도 그 중 하나다. KAB는 이름 그대로 쓰레기 없는 호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호주를 지키자는 취지의 단체로, 지금도 건재하다.

빅토리아 주 정부는 2000년 여성 교정시설인 ‘디어 파크 메트로폴리탄 여성 교도소의 이름을 ‘데임 필리스 프로스트 센터’로 바꿨고, 프로스트는 4년 뒤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그는 63년 3등급 대영제국훈장(CBE)를, 74년 여기사(DAME) 작위에 해당하는 2등급 훈장(DBE)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를 늘 평범한 주부라고 말했지만, “이름 앞에 ‘Dame’을 달고부터는 공무원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항의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태도부터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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