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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공화국 건국 10년 만에 첫 의회 구성 “민주주의를 향한 진정한 첫 걸음”

입력
2017.11.24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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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내전 거쳐 왕정 끝냈지만

제헌의회 정당간 이합집산 파행

공산당 등 좌파 80% 의석 예상

親中 내각 들어설 가능성 커

“20% 성장” “월 5만원 지급” 등

이념 대신 포퓰리즘 공약 판쳐

네팔의 힌두교 전통 행사인 발라 차투르다시 축제기간인 지난 17일 수도 카트만두의 사찰에서 한 여성이 소형 석유램프에 불을 켜고 미소 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네팔의 힌두교 전통 행사인 발라 차투르다시 축제기간인 지난 17일 수도 카트만두의 사찰에서 한 여성이 소형 석유램프에 불을 켜고 미소 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내년은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이 ‘건국’된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다. 오랜 절대왕정의 잔재를 걷어내기 위해 12년(1994~2006년)의 내전을 거쳐 네팔연방민주공화국을 출범(2008년 5월)시킨 지 10주년이다. 네팔이 공화국 대열에 들어서기까지는 절대왕정 체제 하 극심한 불평등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투쟁에 나선 수많은 국민의 피가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신망이 무색하게 헌법 제정까지만 7년이 걸렸고, 아직까지 네팔인들은 공식적인 입법 의회를 가진 적이 없다.

때문에 네팔 국민들에게 오는 26일(현지시간) 총선은 10년만에 주어진 진정한 민주주의 성과다. 연방의회 하원의원 275명이 선출되며 7개 지방의회도 함께 구성된다. 새 하원은 지난 2015년 9월 제정된 헌법에 따라 첫 입법활동을 펼칠 의회가 된다. 이번 총선을 두고 “민주주의를 위한 진정한 첫걸음”, “헌법 이행 절차의 마지막 관문”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이유다. 거대 공산당의 연정 구성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고질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개발도상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한 여성이 공산당 상징과 함께 "네팔공산당에 투표하세요"라고 적힌 배지를 정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13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한 여성이 공산당 상징과 함께 "네팔공산당에 투표하세요"라고 적힌 배지를 정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념 싸움에서 빈곤 해법ㆍ개발 논쟁으로

외교전문 더디플로매트는 지난 16일 이번 네팔 총선을 “경제 번영과 개발 공약의 축제“라고 요약했다. 의석 1~3위를 다투는 거대 정당은 중도좌파 네팔의회당(NC)과 공산주의 계열의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공산당(CPN-UML), 그리고 과거 네팔 내전을 촉발한 마오이스트 계열의 마오주의 중앙네팔공산당(CPN-MC)이다. 뒤의 두 공산당은 앞서 8월 이념적 노선 차이에도 불구하고 총선 승리를 위해 연대를 선언, ‘좌파 연합(leftist alliance)’을 구성했다. 세 정당이 합쳐 최소 8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들 모두 빈곤 및 실업 해결책과 교육ㆍ보건시설 확충 등 경제ㆍ복지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표심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분야에 있어서는 정당간 공약 차이도 사실상 없다. 네팔의회당이 ‘향후 5년간 50만개 일자리 확보’를 부르면, 좌파 연합 측에서는 ‘모든 가구에 최소 1명씩은 일자리를 갖게 하겠다’고 받는 식이다. 다시 좌파 연합에서 ‘육류와 가금류, 유제품을 모두 국내에서 자급 가능하게 하겠다’고 하면 네팔의회당은 ‘5년 안에 채소는 수입할 필요 없게 하겠다’고 발표한다.

경제 공약이 이처럼 대폭 늘어나는 현상을 두고 정당들이 민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2,900만 인구 중 4분의 1이 하루 소득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네팔에서 더 이상 마오이즘 등 정치적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공약을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서부 바이타디 지역에 사는 달리트(‘불가촉천민’으로 불리는 카스트 최하층) 계급의 한 여성은 “정치적 이념은 어찌 됐든 상관하지 않는다”며 “내 아이들에게 교육과 건강을 보장해주고 우릴 도울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더디플로매트에 말했다.

거대 정당들의 허황된 공약에 대한 비난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성장률이다. 네팔의회당과 좌파연합은 각각 경제성장률 13%와 20%에 해당하는 성장 공약을 내걸고 있는데, 지난 27년간 네팔의 최고 성장률은 7%에 불과했다. 그밖에도 ‘모든 가정에 매달 5,000루피(약5만2,500원) 무상 지급’, ‘5년 내 8개 국제공항 신설’ 등 네팔 실정과 맞지 않는 포퓰리즘 공약들이 난무하다. 이에 현지 영자주간 네팔리타임스는 11일 논평을 통해 “정당들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선 조금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자기들만의 ‘꿈의 왕국’으로 들어가 유권자의 신뢰를 모두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끝없는 정당 분열, 이제는 멈추나

정당들의 ‘큰 꿈’을 곱게만 볼 수 없는 데는 이들의 불안정성도 한몫한다. 네팔이 공화국 10년간 제대로 된 의회를 갖지 못한 것 역시 정당간 이합집산으로 제헌의회가 파행을 거듭해서다. 그간 정부는 아홉 차례 바뀌었고, 따라서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현 총리가 10번째 총리다. 새 의회의 등장은 분명 환영할 만 하나 국민으로선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치기에 충분한 과정이다.

다수당 지위를 얻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좌파 연합의 경우 이 같은 불안감은 더욱 심각하다. 사실상 일시적인 결합일 뿐 선거가 끝나면 얼마든 해체가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네팔 공산주의 계열은 실제 공화국 창립 이래 수없이 분열했다. 2013년 2차 제헌의회 당시에는 원내 공산주의 정당만 6개에 달했다. 결국 누가 승리를 거머쥐느냐 보다는 선거 후 얼마나 안정적인 리더십이 구축되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네팔 선거의 최종 승자는 중국?

한편 총선 이후 네팔 내각이 재편될 경우 최고 수혜자는 중국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초 네팔의회당과 함께 친(親)인도 계열이었던 CPN-UML당이 발길을 돌려 마오이스트 계열의 CPN-MC와 친중 진영에 합류함에 따라 가만히 앉아 패권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도 싱크탱크 평화분쟁학연구소의 프라모드 자이스왈 방문연구원은 “네팔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적 전개는 항상 인도 및 중국과 관련이 있다”며 “이번에 새로 연합한 공산당들은 모두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중국이 네팔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넓혀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네팔은 역사적으로 유대가 깊은 인도와 신흥 강대국인 중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최근 중국과 인도가 히말라야 접경지역에서 국경 분쟁을 벌일 때에도 네팔은 결국 중립을 택한 바 있다. 미국 웨스턴 미시건대의 네팔 정치학 전문가인 마헨드라 라워티는 “네팔공산당들은 모두 인도가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며 “인도는 네팔 정부를 파괴할 수도 있고 어려움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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