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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다시 민주주의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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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다시 민주주의를 돌아보다

입력
2017.04.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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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선을 앞두고 경기 수원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투표 용지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경기 수원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투표 용지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탄핵 결정과 조기 대선 국면을 맞아 출판계는 미래세대를 위해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지는 책들을 내놓고 있다. 정치적 격변기에 출판계가 쏟아내는 책은 대개 기득권층에 대한 격한 비판과 경멸, 보수 진영에 대한 조롱기 가득한 풍자, 특정 후보에 대한 반(半)공개적 지지 같은 것들이다. 그러니 이와 확연히 다르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다음 세대에게 차근차근 일러주는 책들이 그 차별성 때문에 눈길을 끈다.

“현실 정치인은 ‘슬픈 영웅’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교장이 낸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이음)는 온 국민의 취미생활 ‘정치인 욕하기’를 강하게 반박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박 교장은 아무리 못마땅해도, 직접 민주제의 유혹이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결국 민주정은 대의제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정치학자다. 그런 박 교장의 책답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조롱’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그는 “제대로 정치적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인간 삶의 현실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지, 현실을 개탄하고 냉소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지적한다.

압권은 전문성을 이유로 현실정치에 온갖 훈수와 비판을 해대는 정치학자들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그 자신이 정치학자임에도 거침이 없다. 철인정치의 플라톤은 “음모에 걸려 노예시장에 팔릴 뻔했고 죽다 살아나 도망쳐야 했다.” 냉혹한 현실주의 정치이론가 마키아벨리는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저술가로 초라하게 삶을 마감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적 지주 루소는 고작 주 베네치아 대사 보좌관 정도만 했을 뿐 그마저도 “무슨 잘못을 했는 지 1년 만에 쫓겨나듯 그만 뒀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로 유명한 막스 베버는 “바이마르공화국 제헌의회 선거에서 떨어졌다.”

민주주의 이론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정치학자들, 현실정치에서는 사실 별 것 아닌 존재들일 뿐이다. 이 때문에 박 소장은 현실의 여러 제약 속에서 가까스로 뜻을 세워 자신의 가치를 쟁취해야 하는 정치인들을 ‘슬픈 영웅’이라 부른다. 이 슬픈 영웅들을 “우습게 알면서 조롱하고 야유하는 반(反)정치주의”는 결국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거듭 강조한다.

“함께 사는 기술 연마가 민주주의”

궁리출판사의 ‘새로운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시리즈’도 인상적이다. 새로운 세대, 그러니까 젊은 세대를 명확한 타깃으로 정한 이 시리즈는, 부산 지역 청소년 인문학서점 인디고서원이 기획한 시리즈물이다. 부산 남천동 학원가에 자리잡은 작은 서점에 모인 10, 20대 청소년들이 나눈 얘기들의 결과물이다.

1권 ‘두잉 데모크라시’(Doing Democracy)는 제목 그대로 민주주의 실천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란, 엄청나게 심오해서 전문가에게 맡겨야만 할 그 무엇이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일 뿐이니 우리가 지금 여기서 직접 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상대 주장을 열심히 듣고, 꼼꼼하게 따져봐 가며 질문하고, 일부는 양보하고 일부는 포기하면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 2권 ‘가난한 사회, 고귀한 삶’은 빈곤, 불평등, 교육 등의 문제에 대한 10대 아이들의 토론과 생각을 담았다. 3권 ‘영원한 소년’은 우리 곁에 숨쉬는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걸맞는 국내외 인물 24명에 대한 짧은 평전으로 구성됐다. 안중근, 이회영, 고은, 에드워드 사이드, 간디 등 익히 알려진 인물들은 물론,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무타 마타이, 인도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 등의 삶을 다뤘다. 궁리 관계자는 “좀 더 사적인 영역이 있고 좀 더 공적인 영역이 있다 뿐이지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정치라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이 시리즈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스로 깨어난 자들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결국 스스로 깨어난 자들에 의해 전진과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일러주는 책들도 다수 나왔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가 쓴 ‘민주주의 잔혹사’는 우리 민주주의에서 망각된 지대를 찾아낸다. 가령 4ㆍ19혁명은 대학생과 대학교수들의 시위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시위의 제1전선에 섰던 도시 빈민, 여성, 노년층들의 혁명이었다. 대형 사업장 거대 노조의 투쟁으로만 알고 있는 1970~80년대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여공’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가장 주변에서 가장 혹독하게 착취당했기에, 스스로 깨어날 수 있었다.

이임한 성공회대 교수가 쓴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1대에서 18대까지 최근 대선들을 모두 정리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호 ‘우남’을 따서 우남회관, 우남공원, 우남학관, 우남송덕관, 우남도서관, 우남정 등을 만들고 80회 생일을 맞아 축하를 위한 초대형 매스게임을 벌이는 등 ‘김일성 우상화’에서나 들어봤던 법한 얘기들이 실제 벌어진 ‘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얘기들이 흥미롭다. 또 1963년 대선 때 박정희 ‘후보’가 자신에 대한 빨갱이라는 색깔론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연설하고 다닌 일화도 흥미롭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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