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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분리독립 결정의 주체와 장소 그리고 시기

입력
2017.10.0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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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이 얼마 전 독립을 위한 투표를 했다. 약 3,000만 명에 달하는 쿠르드 족은 이라크, 터키, 시리아, 이란 등 4개국에 흩어져 있는데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스페인에서도 750만 명에 이르는 카탈루냐인들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1918년 채택한 민족자결주의는 한 민족이 자신만의 국가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그 결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대부분의 아프리카 신규 독립국가와 달리 소말리아 사람들은 언어적ㆍ민족적 배경이 비슷하다. 소말리아는 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이웃 케냐 북동부와 에티오피아 남부의 소말리아계 주민들이 분리 독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케냐와 에티오피아는 이를 거부했고 그 결과 국지전에 여러 번 일어났다. 그랬던 소말리아가 훗날 씨족과 군벌의 내전으로 분열된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오늘날 소말리아 북부의 소말릴란드는 비록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유엔 회원국 자격도 없지만 사실상 독립 국가로 존재한다.

물론 투표가 늘 자결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선 어디서 투표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가령 아일랜드에서 가톨릭계는 만약 북아일랜드 정치지역에서 투표하면 개신교계가 3분의 2를 차지할 것이라며 투표에 반대했다. 반면 개신교계는 아일랜드 섬 전체의 지리 영역에서 투표가 이뤄지면 가톨릭계가 승리할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오랜 갈등 끝에 외부 조정에 의해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찾아왔다.

언제 투표하는지도 문제다. 1960년대에 소말리족은 즉각적 투표를 원했지만 케냐는 부족의 충성을 재구성하고 케냐의 정체성을 만들면서 40~50년을 기다리기를 원했다.

또 다른 문제는 분리 독립에 참가하느니 차라리 현재대로 남겠다는 사람들의 이익과 관련한 것이다. 한 민족이 독립한다고 해서 남은 자들의 자원을 빼앗거나 혼란을 야기하면 도리어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석유 매장량은 상당한 편이며 카탈루냐는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역사가 고무적인 것도 아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1918년 해체된 뒤 주제텐란트는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됐는데 그곳 주민 대부분은 독일어를 사용했다. 주제텐란트의 독일어 사용 주민은 다시 1938년 아돌프 히틀러와의 협정이 체결된 뒤 체코슬로바키아를 이탈해 독일에 합류했다. 그로 인해 체코는 독일계 주민이 살았던 산간 국경 지대를 잃어 국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 다른 아프리카의 사례로는 비아프라를 들 수 있다. 동부 나이지리아 주민들은 1960년 대에 독립해 비아프라라는 나라를 만들었는데 이 때 나이지리아의 다른 주민들이 반발했다. 그 이유는 나이지리아 석유의 대부분이 비아프라에 매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석유가 나이지리아 동부 주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냉전이 끝난 뒤 자결권 문제가 떠오른 나라로는 동유럽과 옛 소련을 들 수 있다. 특히 코카서스에서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야, 압하지야, 체첸 등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요구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가 그럭저럭 자신들만의 독립 공화국을 탄생시켰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무슬림은 자신들만의 독립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군에 의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지금 자결권은 모호한 도덕 원칙으로 드러나고 있다. 윌슨은 자결권이 중부 유럽을 안정시킬 것으로 보았지만 히틀러는 이 원칙을 활용해 중부 유럽의 허약한 국가들을 공격했다.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세계 국가의 10% 미만이 동질적이라면, 자결권을 이차적인 도덕 원칙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사실 적대적 민족은 이따금 마블 케이크처럼 잘 섞인다. 그로 인해 민족의 분열이 어려워지며 그것이 아마도 금세기 유엔 가입 국가가 소수에 그치는 이유일 것이다. 남수단은 수단에서 분리했지만 이후 인종적 혼란은 계속됐을 뿐 아니라 줄어들지도 않았다.

미래를 위한 최선의 희망은 누가 결정하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이 결정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여러 집단이 불안정한 상태로 섞여있는 경우 내정의 결정에 어느 정도 자율을 허용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스위스나 벨기에 같은 나라는 상당한 수준의 문화ㆍ경제ㆍ정치적 자치권을 구성 집단에게 부여한다.

자치권이 충분하지 않은 나라라면, 체코슬로바키아가 평화롭게 두 개의 주권국가로 나눠진 것처럼 우호적 이별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자결권에 대한 절대적 요구는 폭력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런 요구는 매우 조심스럽게 취급돼야 한다. 자결권을 도덕 원칙으로 불러내기 전에, 우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외교 버전인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의 뜻을 깊이 새겨야 한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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