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15 14:24
수정 : 2017.03.15 14:24

[애니칼럼] ‘흙수저’ 시골개도 생존권이 있다

등록 : 2017.03.15 14:24
수정 : 2017.03.15 14:24

얼마 전 강연이 있어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 다녀왔다. 잠시 주변 마을을 둘러보니 개를 기르는 집이 꽤 많았다.

한 집에 한두 마리씩, 1m쯤 되는 줄에 묶여 있는 개들이 눈에 띄었는데 흔한 플라스틱 개집도 없이 맨바닥에 박힌 말뚝에 쇠줄로 묶여 있기도 했다. 반복적으로 눈비에 젖었다 마르는 과정에서 흙먼지까지 뒤집어쓰는 바람에 떡처럼 뭉쳐버린 털을 갑옷처럼 입고 있는 개도 보였다.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개집 앞에 개 한 마리가 쇠줄로 묶여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21.8%, 인구수로는 1,000만 명이라고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반려동물의 펫(Pet)과 가족의 패밀리(Family)를 합친 ‘펫팸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들을 겨냥한 산업도 급속도로 성장했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반려동물산업 시장 규모는 2012년 9,000억 원에서 2015년 1조8,000억 원으로 두 배가 늘어났으며, 2020년까지 5조8,1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국회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가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일 본회의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는 동물전시업, 위탁관리업, 미용업, 운송업 등을 영업의 종류에 추가하는 안이 포함됐다. 성숙한 반려동물문화 정착을 위해 동물등록을 하지 않거나 배설물을 수거하지 않은 반려동물 소유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도 마련했다. 여주시, 울산시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반려동물테마파크 등 앞다퉈 반려동물시설을 설립하고 있다. 이 정도면 가히 ‘반려동물 전성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동물, 특히 반려동물로 가장 많이 길러지는 ‘개’의 처지는 180도 달라진다. 마당 한구석에서 자기 몸길이만 한 줄에 묶여 사람 손길 한 번 못 받아보고 부엌에서 남은 음식을 먹고 사는 개들은 ‘반려견’이라기보다는 ‘집 지키는 개’에 가깝다. 뜬장이라고 부르는, 사면이 뻥 뚫린 사육장에서 네다섯 마리씩 길러지다가 여름 장날이면 사라지는 개들도 부지기수다.

대다수 시골개들은 뜬장이라고 부르는, 사면이 뻥 뚫린 사육장에서 네다섯 마리씩 길러진다. 여름 장날이면 사라지기도 부지기수다.

‘개는 원래 그렇게 기르는 것’이라는 오래된 인식과는 달리, 밖에서 기르는 개들은 상당한 고통을 겪는다. 여름은 찌는 듯이 덥고 겨울은 매섭게 추운 우리나라의 기후는 야외에서 동물을 기르기에 적합한 날씨는 아니다. 털이 있으니 괜찮다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개도 심한 추위에 노출되면 저체온증이나 동상에 걸릴 수 있고 무더위에 노출되면 열사병에 걸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염분이 많은 잔반을 먹으면 신장과 간 등에 손상을 입을 수 있고, 충분한 양의 물을 섭취하지 못하면 탈수증에 걸릴 위험이 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의 명보영 수의사는 밖에 사는 동물은 모기를 매개로 하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되거나 흙, 풀을 통해 혈액기생충을 매개하는 진드기, 개선충, 벼룩 등에 감염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다. 모두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다. 또한 사람이나 다른 동물과 교류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는 개가 혼자 묶여 길러지면서 겪는 외로움과 지루함은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며, 정형행동이나 공격성을 보이는 원인이 된다.

최근 동물보호인식이 확산되면서 사료나 물을 제공받지 못하거나 병이 들었는데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동물을 목격한 시민들이 동물보호단체에 구조를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사육과 관리에 대해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휴식 및 수면이 보장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했을 뿐,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현행법에서 죽이거나 상해를 입혀야만 동물학대행위로 인정하던 것을 이번 개정안에서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로 정의했지만, 동물이 스스로 고통을 호소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동물을 방치해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철장에 갇혀 있는 개가 사람이 다가오자 반가워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에서 사료, 물, 집 등 동물에게 적절한 관리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동물방치(neglect)를 학대행위로 명시하고 있다. 뉴욕 주의 경우 야생동물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사료와 물을 제공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동물학대행위로 간주한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도 적절한 음식, 물, 안식처, 또는 날씨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동물이 12시간 이상 사료와 물을 제공받지 못했을 경우 누구라도 합법적으로 사료와 물을 주러 사유지에 들어갈 수 있고, 이후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동물을 이유 없이 묶어놓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도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지역격차를 보이는 것이 동물복지문제만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동물을 길러온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쉽지 않다. 시골일수록 반려견과 식용견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수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푸들이나 시골에 묶여 사는 백구나 생존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산업 성장도, 시설 확충도 모두 환영할만한 변화다. 그러나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그늘진 곳의 사람들을 돌아봐야 하듯, 우리 사회에서 동물복지기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동물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인데, 흙수저로 태어난 동물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생존을 위한 기본권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로 향해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글·사진=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AWAR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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