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흥수 기자

등록 : 2018.01.23 18:00
수정 : 2018.01.24 13:11

적벽 밑 하얀 길…시간을 걷는 겨울 협객이 되다

한겨울에만 열리는 화산강의 비경...한탄강 얼음트레킹

등록 : 2018.01.23 18:00
수정 : 2018.01.24 13:11

철원 한탄강얼음트레킹 송대소 구간. 쏟아져 내릴 듯한 주상절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겨울이 준 선물이다. 철원=최흥수기자

한탄강은 숨겨진 강이다. 평지에서 갑자기 수직으로 툭 내려 앉았다. 평평하고 드넓은 철원평야에서 20~30m 내려서야 물줄기와 만난다.

제방이 없으니 다리를 지날 때가 아니면 가까이서도 강이 있으리라 짐작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한탄강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용암분출로 이루어진 화산강이다. 신생대 제4기 홍적세(洪積世, 약 200만~1만년 전)에 북한 평강군에 위치한 오리산에서 10회 이상 화산활동이 있었다. 흔히 생각하는 거대한 폭발은 없어서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높은 봉우리는 생기지 않았다. 대신 갈라진 지표면에서 꿀렁꿀렁 흘러내린 용암이 평강과 철원 일대를 바다처럼 뒤엎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용암의 바다는 드넓은 평야로 변했고, 현무암 틈을 벌인 물줄기는 협곡을 이루었다.

여름철 래프팅을 즐기며 스치거나 먼 발치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억겁의 시간이 빚은 자연 예술을 겨울이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철원군에서 매년 한탄강얼음트레킹 축제를 열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 20일 시작해 28일까지 이어진다. 태봉대교 아래를 출발해 승일교, 고석정을 거쳐 순담계곡까지 약 7.5km 코스지만 송대소, 승일교, 고석정 등 중간에서 내려가 일부 구간만 걸어도 된다.

송대소 주변은 강 양편으로 5~6각형의 주상절리가 뚜렷하다.

얼음트레킹은 검붉은 적벽 아래 송대소를 걷는다.

쩡쩡거리는 얼음 울음에 조금씩 긴장하기도….

태봉대교에서 약 1km 아래 송대소는 현무암 협곡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30m 수직 절벽을 크게 휘돌아가는 물줄기가 깊은 소(沼)를 형성한 곳으로 꽁꽁 얼어붙은 비취색 강 양편으로 주상절리가 선명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쩡쩡거리는 얼음 울음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쏟아져 내릴 듯한 다각형 바위 기둥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100여m에 이르는 거대하고 검붉은 바위 절벽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건 이 추위 이 겨울의 선물이다. 전국에 최고라고 자랑하는 주상절리와 적벽(赤壁)이 많지만, 바로 앞에서 이런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다.

송대소에서 다시 3km를 내려와 승일교 아래는 축제 놀이터로 꾸몄다. 얼음폭포, 얼음나무, 얼음조각을 장식해 눈이 부족해도 겨울 풍경을 즐길 수 있고, 평창동계올림픽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눈썰매장도 만들었다. 승일교는 철원이 공산당 치하에 있을 때 건설을 시작해 수복한 후 완성한 다리로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이름했다는 뒷얘기가 전한다.

승일교 아래에 설치한 얼음기둥.

고석바위는 한때 누드사진 작가들이 단골로 찾던 곳이었다.

고석바위 위에 멋들어지게 올라 앉은 소나무.

승일교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철원의 대표 관광지 고석정(孤石亭)이다. 고석정은 바로 앞 강 한가운데 20m 높이로 우뚝 솟은 고석바위와 어우러진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거대한 화강암이 층층이 쌓인 바위와 그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군락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고고하다. 고려 충숙왕과 조선 태종ㆍ세종ㆍ문종 등 역대 왕들이 자주 들렀다고 전한다. 관군에 쫓긴 임꺽정이 고석바위 안 석굴로 대피했다거나, 수시로 꺽지로 둔갑해 한탄강에 몸을 숨겼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돌계단도 눈여겨볼 만하다. 구멍 숭숭 뚫린 새까만 현무암으로 만들어 잠시 제주에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까지 구간은 올해 새로 얼음트레킹 코스에 포함됐다. 물살이 빠르고 경관이 수려해 래프팅 명소로 꼽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물살에 닳은 웅장한 화강암 바위들이 계곡 양편으로 포진하고 있어 상류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강물이 얼지 않은 지점에는 부교를 설치해 걷는 데는 지장이 없다. 물과 바위, 얼음 위를 번갈아 걸으며 겨울 정취 속으로, 자연의 시간으로 천천히 빠져든다. 따뜻한 음료와 깔개를 준비해 반질반질한 바위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물살에 닳은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순담계곡은 현무암이 많은 상류와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트레킹 도중 바위에서 앉아 쉬는 여행객들.

트레킹이 끝나는 순담계곡은 지역 주민들이 천렵을 즐기거나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유명하다. 바위 사이를 급하게 흐르던 물살이 강이 넓어지며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뽀얗게 닳은 바위가 주위를 감싸고 있어 풍광이 넓고도 아늑하다. 순담은 어린 잎을 약으로 쓰는 순채(蓴菜)가 자라는 연못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조선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가 요양하며 순담(純潭)이라는 연못을 만든 곳이었다고도 전한다. 순담계곡 주변에 요양시설이 많은 것도 그 영향으로 보인다.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 머릿속까지 씻어주는 깨끗한 바람소리에 한 겨울 추위도 거뜬하게 버틸 힘을 얻는다.

철원=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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