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케이트 셰퍼드(9월 19일)

입력
2017.09.19 04:40
0 0
1893년 오늘, 영국 식민지 뉴질랜드 여성들이 세계 최초로 선거권을 갖게 됐다. 그 일을 해낸 게 케이트 세퍼드였다.
1893년 오늘, 영국 식민지 뉴질랜드 여성들이 세계 최초로 선거권을 갖게 됐다. 그 일을 해낸 게 케이트 세퍼드였다.

1893년 9월 19일 뉴질랜드 의회가 여성 참정권 법안을 가결했다. 18~19세기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의 스웨덴과 코르시카공화국, 영국령 남태평양 핏케언 제도 등과 식민지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짧은 기간 여성이 선거권을 누린 예는 있다. 하지만 현존 국가 가운데 여성 참정권을 법적으로 인정한 첫 국가는 뉴질랜드다. 영국 리버풀 출신 이민자 케이트 셰퍼드(Kate Sheppard, 1847~1934)가 이루다시피 한 업적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변호사 아버지가 일찍 작고하면서 셰퍼드는 기독교 사회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던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목사 삼촌네서 성장했다. 한동안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살았다고 한다. 셰퍼드는 스무 살 무렵 먼저 결혼해 호주로 이주한 언니네로 이주했다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자리를 잡았다.

셰퍼드는 교회 사업에 열성을 쏟았다. 헌금을 모으고, 신도 조직사업에 가담했다. 그 교회도 진보적인 삼위일체 회중주의 교회였다. 재능 있는 청년 활동가였던 그는 37세에 교회 여성연합회 총무가 됐다. 이듬해 미국 교회여성절제회(WCTU) 국제선교사이자 페미니스트 메리 리빗(Mary Leavitt, 1830~1912)이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당시 WCTU는 금주 등 생활 개혁운동에 열성을 쏟던 때였다. 1876년 WCTU 뉴질랜드 지부가 설립됐고, 그 중심 인물이 셰퍼드였다.

셰퍼드의 첫 의회 청원은 여성 술집 종업원 고용 금지와 청소년 술 판매 금지였다. 주류업계는 당시 강력한 로비집단 중 하나였고, 의회는 여성단체 의견을 묵살했다. 셰퍼드는 여성 참정권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1888년과 91년, 92년, 93년 잇달아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두 번째부터는 서명자 명부를 첨부했다. 1만 명, 2만 명, 3만 2,000명. 93년 청원 서명자는 성인 여성 인구의 약 절반 규모였다. 의회는 20대 18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엄밀히 말하면 피선거권 없는 선거권이었다.

여성 참정권은 민주주의 종주국 영국이나 여성참정권 운동이 처음 시작된 프랑스 등 유럽의 앞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 장악력(젠더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식민지ㆍ자치령과 신생 국가 및 지역에서 앞서 성취됐다. 영국 식민지 뉴질랜드가 자치국이 된 건 1907년이었고, 독립한 건 한국보다 2년 늦은 1947년이었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