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우승 뒤 첫 리사이틀
슈베르트 곡 다소 아쉬웠지만
쇼팽 발라드 과감한 해석 일품
감동할 준비로 무장한 관객 앞에 ‘샤이 보이’ 조성진도 대담해졌다. 주선율과 레이어(여러 개의 음색으로 층을 쌓는 것)의 결을 달리한 그의 연주는 또래 어떤 피아니스트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들 법한 농익은 솜씨였고, 다분히 입체적인 표현은 선명한 강약 대비, 명확하게 도려낸 선율과 맞물려 물성(物性) 없는 음악에 서사를 만들었다.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면서 동시에 연결된, 연작 소설 같은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 기다렸다는 듯 기립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3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사이틀은 한껏 성숙한 연주를 만나는 자리였다. 이번 연주회는 재작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의 국내 첫 독주회란 점에서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됐고 3, 4일 두 차례 공연 3,800석이 순식간에 팔려 나가며 롯데콘서트홀 개관 이래 가장 높은 유료 티켓 판매를 기록했다.
첫 곡으로 선보인 알반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연주는 서정적이면서도 묵직했다. 복잡 난해한 20세기 신빈악파 작곡가 중 가장 감성적인 베르크의 소나타를, 조성진은 첫 주제 도입부터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타건으로 친근하게 풀어냈다.
선율 흐름을 능숙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훌륭했지만 여느 연주자보다 긴 페달링 때문인지, 잔향 긴 콘서트홀의 특성 때문인지 주요 패시지(멜로디 흐름을 연결하는 악곡의 짧은 부분)가 자주 뭉개져 들리는 것은 아쉬웠다. 특히 슈베르트 소나타 19번은 개별 음의 성격을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리 뭉침 현상이 심했다.
반복되는 음형으로 다분히 정적으로 들리는 슈베르트 소나타를 잘 정돈된 베토벤처럼 해석한 연주는 관객마다 호오가 갈릴 듯하다. 1악장 도입부부터 힘을 실은 연주는 시종 강하게 진행돼 단조로웠고, 명상적 분위기의 2악장도 각 악구 첫 음을 강조해 선율 흐름이 부드럽진 않았다. 다만 장단조를 넘나들다 후반 절정부에서 드라마틱한 폭발력을 자랑하는 4악장은 이런 해석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백미는 2부 쇼팽 4개의 발라드 연주였다. 1부와 마찬가지로 자신감에 찬 연주는 강약 대비, 템포 흐름이 다소 과장됐지만 유려하고 시적이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3일 독주회는 감흥에 충실한 연주를 보여줬는데, 쇼팽 4개의 발라드 역시 (최근 발매한)음반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해석이었다. 발라드 1번 첫 음은 악보상 포르테(f·강하게)라도 보통 차분한 느낌으로 시작하는데 (조성진은) 도발적으로 연주했다”며 “발라드의 장르적 성격을 극대화해 드라마틱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서정성을 보여주면서 대비시켰다”고 말했다.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피아니스트)는 “쇼팽 콩쿠르 당시 프레이징(악상을 구분해 정리하는 것)을 섬세하게 다듬는데 신경 썼지만, 이제는 높이 날아오른 새의 시선에서 곡의 전체와 부분을 모두 아우르면서 연주한다”고 평했다.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을 위해 조성진은 드뷔시 ‘달빛’,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화제의 콘서트는 사인회 줄도 길게 늘어섰다. 연주회가 끝난 후 600여명이 몰렸다. 콘서트홀은 준비한 프로그램 1,000부가 하루만에 소진돼 추가로 700부를 긴급 제작했고 메모장, 달력 등 조성진 관련 MD 상품도 끊임없이 팔려나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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