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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안철수의 착각

입력
2017.12.25 17:3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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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노선 변신 거듭한 지난 5년

명분없는 바른정당과 통합 지지 얻을까

자신만의 가치 내걸었던 초심 되새기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20일 바른정당과의 합당안을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20일 바른정당과의 합당안을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정치 입문 5년이 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변신은 놀랍다. 물정 모르는 신출내기 정치인에서 노련한 직업정치인으로 변모했다. 좋게 말하면 현실감각을 갖췄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내세운 ‘새정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정체성의 변화는 어지러울 정도다. 안철수는 정치를 시작하면서 386의 시대정신과 벼랑 끝에 선 약자를 언급하며 사회 변화 의지를 다짐하곤 했다. 새정치연합 창당과 민주당과의 합당은 자신의 원칙과 가치를 실현시키는 과정이었다. 당시 젊은층과 일부 진보개혁 인사들의 지지를 받은 건 그런 이유다.

하지만 당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그는 1년 만에 자신이 만든 당을 뛰쳐나와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그나마 지난해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제 3당에 올라서도록 투표한 것은 온건진보 노선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우향우로 방향을 틀었다. 정치 복귀를 선언하면서 “실천적 중도개혁 정당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확립하겠다”고 했으나 그가 보여준 것은 양비론과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정치적 주장이 모호하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다 보니 지지율은 5%로 창당 이후 최저치다.

문제는 정체성의 변화가 대중과의 공감이나 치열한 고민이 아닌 단순한 정치공학적 접근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다음에는 꼭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강한 권력욕구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가 고공행진 중인 상황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반면 보수진영은 아직 뚜렷한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의 메시아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TK와 호남을 묶고 중도와 보수의 대통합을 이뤄내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여겼을 법하다. 이런 추론에서라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원대한 꿈을 실현시켜줄 첫걸음인 셈이다.

하지만 안철수의 구상이 예측대로 되기에는 난관이 적지 않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명분으로 내세운 근거는 통합 시너지로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단숨에 지지율 2위의 정당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다.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둘째 치고라도 그 전제는 당대 당의 온전한 통합이다. 호남의원 다수의 반발로 결국 당이 깨질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지지율은 물론이고 의원 숫자도 늘어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분당으로 인한 이탈과 통합에 반대하는 바른정당 의원 일부가 자유한국당으로 옮길 경우 국민의당 현 의원 39명보다 줄어드는 ‘마이너스 통합’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철수의 대권전략에 더 치명적인 것은 통합신당의 주도권이다. 월간중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통합신당의 대표인물로 유승민(34.4%) 바른정당 대표가 안철수(17.4%)를 크게 앞질렀다. 신당이 겨냥하는 ‘중도보수’의 이미지에 ‘보수개혁’을 주장해온 유승민이 더 적합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의 통합 행보는 스스로 내세웠던 정책과 가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명분과 대의에도 어긋난다. 예컨대 안철수는 총선에서 햇볕정책 계승을 분명히 했지만 유승민은 햇볕정책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유승민은 “우리 당 정체성은 보수에 있다. 국민의당 일각에서 중도보수라는 말을 쓰는데 표현에 문제가 있다”며 통합신당의 정책방향을 명백히 밝혔다. 설사 통합이 필요하다 해도 양 당의 노선과 지향점 등 따져봐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인에게 변화에의 의지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정체성과 가치는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 존재감을 얻을 수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과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 정권교체가 됐더라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을 뛰쳐나오지 않고 당을 계속 이끌었더라면, 안철수는 지금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됐을 것이다. 5년 전 자신만의 가치와 비전을 내걸고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의 초심을 새겨보기 바란다.

c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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