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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된 잡초…추사 김정희와 제주 수선화

입력
2018.0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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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제주의 돌담 아래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선화
한겨울 제주의 돌담 아래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선화

날씨는 차가워도 꽃봉오리 둥글둥글(一點冬心朶朶圓)

그윽하고 담백하여 감상하기 그만이다(品於幽澹冷雋邊)

매화나무 고고해도 뜰 밖 나기 어렵지만(梅高猶未離庭砌)

맑은 물에 핀 수선화 해탈신선 너로구나(淸水眞看解脫仙)

보물 제547호 충남 예산의 김정희 종가 유물 중 추사의 칠언시 ‘수선화(水仙花)’라는 작품이다.(번역은 국립중앙박물관(2006), ‘추사 김정희 학예 일치의 경지’를 참조했음.) 서예뿐만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1786~1856)는 55세가 되던 해인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돼 8년 3개월간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많은 이들이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를 떠올리지만, 추사는 수선화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완당선생전집에 다섯 편의 시(詩)가 전해질 정도인데, 추사는 수선화를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와 비교하면서 ‘해탈신선’이라는 이름으로 극찬하고 있다. 어쩌면 뜰 안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매화와는 달리 들판에서 자라는 수선화를 통해 절해고도에서 유배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봤는지도 모를 일이다.

추사는 추위 속에 피어나는 수선화의 강인함을 ‘해탈 신선’에 비유했다.
추사는 추위 속에 피어나는 수선화의 강인함을 ‘해탈 신선’에 비유했다.
하얀 꽃받침과 노란 꽃망울 때문에 제주에서는 ‘금잔옥대’라고도 부른다.
하얀 꽃받침과 노란 꽃망울 때문에 제주에서는 ‘금잔옥대’라고도 부른다.

그의 지극한 사랑 때문인지 제주에서 수선화를 보면 추사를 먼저 연상하게 된다. 심지어 수선화는 추사가 발견한 꽃이라고도 한다. 옛 그림이나 글에서 추사 이전에는 수선화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었는데, 추사를 시작으로 수선화를 노래한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전국적으로 흔한 꽃이 아니었기에 추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제주에서도 추사가 유배생활을 했던 대정읍 일대에 유독 수선화가 많다. 또한 제주지역 상당수의 학교에서 수선화를 교화(校花)로 삼고 있는데 대정읍과 한경면, 서귀포 등 추사가 머물렀던 주변 지역 학교에서 두드러진다.

추사와 달리 당시의 제주 사람들은 수선화를 그저 잡초의 하나로 여겼던 것 같다. 그의 글에 보면 ‘수선화가 곳곳에 여기저기 널려있다. 밭고랑 사이에 더욱 무성한데 이곳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고 보리갈이 할 적에 모두 뽑아 없앤다’고 할 정도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예컨대 제주의 해안 절경이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멋진 풍광이지만, 농부의 입장에서는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척박한 땅인 것처럼.

어쨌거나 추사는 칠언시 ‘연전금화(年前禁花)’에서 ‘멍청한 사내놈들 신산(神山, 한라산)까지 못 갔던지/ 곧고도 미끈한 게 예 알던 모습일세/ 세상 모든 하늘 꽃은 물들지 않지마는/ 세상에 내려와서 온갖 설움 겪었구나/ 몇 해 전에 수선화를 캐내라고 하였다’고 노래하고 있다.

수선화는 말 그대로 물에 떠 있는 신선이라는 의미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운다고 하여 설중화(雪中花)라고도 불리는데, 제주에서는 수선화라는 이름과 더불어 금잔옥대라 부르기도 한다. 꽃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하얀색 꽃받침과 그 안의 노란 꽃망울이 옥 받침 위의 금잔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제주 돌담 아래 핀 수선화
제주 돌담 아래 핀 수선화
추위 속에서 소담스런 꽃을 피워 강인함이 느껴진다.
추위 속에서 소담스런 꽃을 피워 강인함이 느껴진다.

특히 제주의 수선화는 돌담과 어우러지며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모든 나무와 꽃이 겨울을 앞두고 잎사귀를 떨어뜨릴 때 비로소 잎이 나오고 한겨울 추위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매화와 동백 등 겨울에 피는 여타의 꽃들이 커다란 몸체를 자랑하는데 반해 수선화는 가녀린 잎사귀와 더불어 아담한 꽃을 피워 훨씬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다는 인상을 준다. 물기가 많은 습한 곳에서 자란다 하여 수선(水仙)이지만, 해탈한 신선의 반열에 올리고자 했던 추사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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