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홍콩 축구 발전 이끌며 인천아시안게임 16강 쾌거
홍콩 정부 무관심서 돌아서게 "안주하고 싶지 않아 고심 중"
지난해 9월 25일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에서 한국 대표팀은 한국인 수장 김판곤(46) 감독이 이끈 홍콩 대표팀과 맞붙었다. 결과는 3-0 한국의 완승. 하지만 슈팅 수 0-16의 압도적 열세 속에서 단 한 점의 실점도 하지 않았던 홍콩의 전반전의 투지는 한국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8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홍콩 축구계도 그 때의 16강 성적을 월드컵 16강만큼이나 기쁘게 받아들였다.
지난 10일 홍콩 침사추이에서 만난 김판곤 감독은 “홍콩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하니 그간 무심했던 정부의 관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와 같은 ‘내셔널 트레이닝 센터’의 건립이 최근 확정됐다”고 밝히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홍콩은 내게 기회의 땅이었다”
김 감독이 본격적으로 홍콩 대표팀 감독을 맡은 건 2012년 11월. 같은 시기부터 최강희, 홍명보, 신태용(대행), 울리 슈틸리케까지 3차례의 감독 교체가 이뤄진 한국 대표팀과 견주면 ‘장기집권’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홍콩 축구계에서 김 감독에게 주는 신뢰는 두텁다.
김 감독에게도 홍콩은 ‘기회의 땅’이다. 프로선수 3년 차 때 정강이뼈가 완전히 두 동강 나 일찌감치 선수 인생에서 내리막 길에 들어선 그는 30대에 막 접어 든 2000년, 지도자의 꿈을 품고 홍콩으로 향했다. 프로팀의 플레잉 코치로 시작해 젊은 나이에 감독직까지 맡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자신감을 얻었다.
2005년, 김 감독은 홍콩에서의 성과를 안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K리그 부산 아이파크는 영어 구사가 가능한 그에게 이안 포터필드(사망·영국) 감독을 보좌하라며 수석코치 자리를 내줬다. 1년 뒤 포터필드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며 37세의 나이로 감독 대행을 맡은 그는 바닥권을 전전하던 부산을 단숨에 상위권으로 올려놨다. ‘판곤 매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구단은 끝내 그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2009년 황선홍 체제를 선택한 구단에서 등 떠밀리듯 나오게 된 그는 미련 없이 홍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단순한 축구감독이 아닌 한 나라의 축구 시스템을 총괄하는 ‘매니저’의 꿈을 이뤘다.
“슈틸리케 성공 보며 한국 축구 희망 봐”
홍콩에서 ‘외국인 국가대표 감독’으로 살아 온 그는 지난해부터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슈틸리케 감독을 보며 남다른 감회를 느끼고 있다. 9일 중국 우한에서 막을 내린 2015 동아시안컵을 직접 관전하고 온 그는 유럽파 없이 우승을 일군 슈틸리케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 “화려하지 않되 충실한 재료를 골라 가장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셰프 같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여기에 “슈틸리케 감독에게 더 많은 신뢰와 기다림이 필요하다”고도 힘주어 덧붙였다. ‘외국인 국가대표 감독’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김 감독의 거취에 대한 홍콩 언론들의 관심은 뜨겁다. 홍콩 생활만 내리 7년째인 올해를 끝으로 홍콩 축구협회와 계약이 만료됨과 동시에 12월 1일이면 홍콩 영주권 취득 자격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맞물려 김 감독의 고민도 커졌다. 홍콩에서의 삶도 만족스럽지만 안주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다.
“과거엔 감독만 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선수단의 체계적인 관리나 기술자문역할까지 맡을 수 있는 총괄 매니저 역할이 발전적인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한 그는 “지도자로선 아직 젊기에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도전의 무대가 한국 무대라면 더 좋다”고 덧붙였다. 슈틸리케의 성공을 보며 폐쇄적이었던 한국 축구계에서 못다 펼친 자신의 축구 철학을 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다.
홍콩=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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