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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향 기자

등록 : 2017.12.11 14:39
수정 : 2017.12.11 19:03

법정물로 돌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관객이 배심원 자리에 앉길”

법정드라마 ‘세 번째 살인’ 14일 개봉

등록 : 2017.12.11 14:39
수정 : 2017.12.11 19:0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0년간 천착해 온 가족드라마에서 벗어나 시야를 사회로 돌려보고 싶었다”며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로 법정드라마 ‘세 번째 살인’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티캐스트 제공

영화 ‘세 번째 살인’(14일 개봉)은 깊은 밤 천변을 걷던 한 사내가 앞서 가던 다른 사내를 둔기로 살해하고 휘발유를 뿌려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살인사건은 범죄물에서 흔하게 다뤄지는 소재이지만, 이 영화에서 남달리 생경하게 다가오는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55) 감독 때문이다. 가족 영화로 친숙한 그의 작품 세계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이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리 만난 고레에다 감독은 “좋은 의미에서 관객에게 멋진 배신감을 안기고 싶었다”고 영화를 소개했다.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감독이기도 하다.

‘세 번째 살인’은 ‘걸어도 걸어도’(2008)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까지 가족 영화 연작을 마무리한 고레에다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법정드라마다. 자신을 해고한 공장 사장을 살해한 미스미(야쿠쇼 코지)와 그를 변론하게 된 유능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진실 공방을 다뤘다. 30년 전 동일 전과가 있는 미스미의 사형이 확실한 상황에서 시게모리는 형량을 낮추려 변론 전략을 짜지만, 접견 때마다 미스미는 진술을 번복하고, 재판의 유불리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게모리는 진실을 추궁하며 흔들린다.

“가족에서 사회로 시야를 넓혀 보고 싶었다”는 고레에다 감독은 평소 고민해 온 주제를 꺼내 들었다. “일본은 선진국으로선 이례적으로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국민 80%가 지지하고 있죠. 아무도 이런 상황을 문제시하지 않아요. 과연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한번쯤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만들 때 법률 자문 변호사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영화의 실마리가 풀렸다. “한번은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어요. ‘법정은 진실을 규명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변호사는 무얼 하는 사람이냐 물으니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무척 정직한 답변이라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법정은 정의와 진실이 바로 서는 곳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비틀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그래서 진실을 고민하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됐습니다.”

영화 ‘세 번째 살인’은 변호사 역의 후쿠시마 마사하루(왼쪽)와 살인범 역의 야쿠쇼 코지의 연기 앙상블이 빛을 발한다. 티캐스트 제공

후쿠야마와 야쿠쇼의 명연기로 빚어진 접견실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두 사람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엇갈려 앉아 있다가, 거울 보듯 상대를 마주하게 되고, 이윽고 유리벽에 비쳐 서로 얼굴이 포개지는 장면에 이르면, 절정에 달한 긴장감에 스크린이 터져나갈 것만 같다. “7차례의 접견실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의 변화를 담아 보고 싶었어요. 상대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론 내가 상대를 본다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상대에게 관찰 당하는 순간도 있겠죠. 시게모리가 보는 미스미는 매번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영화는 사실과 진실을 뒤섞으며 심판과 구원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미스미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악인인가, 아니면 자신을 희생한 심판자인가, 악을 보고도 외면하는 건 죄가 아닌가, 일부의 진실로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수 있는가,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사형제도는 온당한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온갖 물음들 속에 관객을 가둬놓고도 영화는 끝까지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관객을 배심원 자리에 앉혀 놓고 싶었다”며 “감독인 나 역시 배심원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연출했다”고 말했다.

미스미는 살인을 두 번 저질렀지만 영화 제목은 ‘세 번째 살인’이다. 어떤 의미인지 묻자 고레에다 감독은 도리어 기자의 생각을 물어 왔다. 일본에선 ‘사법 살인’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다고 한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누군가 들려준 ‘진실의 죽음’이란 답변도 인상적으로 기억했다. “영화를 본 관객의 숫자만큼 다른 답이 있을 겁니다. 저 또한 그 이상의 답은 갖고 있지 않아요. 많은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세 번째 살인’ 촬영장에서 인물의 배치를 계산하며 어떻게 촬영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티캐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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