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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월드컵경기장서 페루 감옥까지… 영상보안 기술력 세계가 인정”

입력
2018.07.22 12:20
수정
2018.07.22 21:0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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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CCTV 보안장치 본 후

인터넷 연결 가능성 발견

창업 이듬해 세계최초 DVR 출시

아날로그→디지털 전환시기

제조자 개발생산 사업방식서

브랜드 비즈니스로 변신

최근엔 AI분야에 연구 집중

“무인 편의점 확산 등 호재…

국내 정부기관의 관심 아쉬워”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가 20일 경기 성남시 판교 아이디스연구소에서 IP카메라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가 20일 경기 성남시 판교 아이디스연구소에서 IP카메라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달 러시아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시의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울타리 밑을 기어 몰래 경기장으로 침입하려던 일당이 붙잡혔다. 이들을 발견한 건 경기장을 사각지대 없이 지켜보던 1,500여개의 고해상도 폐쇄회로(CC)TV와 통합관제 시스템. 한국의 영상보안 기업 아이디스의 ‘작품’이었다.

러시아월드컵 경기장, 일본 도쿄 시청, 페루의 감옥,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국영은행. 이 기관들의 공통점은 감시부터 관리까지 책임지는 아이디스의 보안 솔루션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달(50) 아이디스 대표는 “보안 분야는 안전과 직접 연관돼 있다 보니 충분히 검증되지 않으면 쓰지 않는 굉장히 보수적인 시장”이라며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 이벤트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 주요 기관들이 우리 보안 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은 창업 후 20여년간 성능과 안정성 면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스는 김 대표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1997년 설립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교환 연구원으로 지내던 당시, 기술 하나로 당당히 성공하는 현지 벤처기업가들이 부러워 대기업이 하지 않는 기술 분야 창업을 하겠노라 결심했던 게 시작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우연히 카이스트 보안실을 지나가던 김 대표의 눈에 구식 CCTV 보안장치들이 들어왔다. “그때는 화질이 엉망인 비디오테이프에 CCTV를 녹화했는데, 테이프 하나에 8시간밖에 녹화를 못 하니 보안실에 비디오테이프가 산처럼 쌓여 있는 겁니다. 특정 장면을 찾고 싶으면 일일이 비디오테이프를 찾아서 돌려봐야 했고, 통합관제는 꿈도 못 꿨죠.”

당시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하던 시기였다. 김 대표는 CCTV와 인터넷의 연결에서 가능성을 봤다. 그 길로 박사과정 동료 4명과 함께 아이디스를 창업하고 이듬해 세계 최초의 디지털 저장장치 ‘디지털비디오레코드(DVR)’를 세상에 내놨다. 하드디스크 저장이 가능해져 녹화 테이프를 교체할 필요가 없고, 인터넷 네트워크로 수많은 CCTV를 한꺼번에 통합 관제할 수 있게 됐다. 특정 장소를 지나간 사람이 몇 명인지 자동으로 파악하는 등 영상분석(VA) 기술까지 접목되자 세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98년 미국 국제보안컨퍼런스(ISC)에 선보인 아이디스의 보안시스템은 그해 바로 미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유니버설스튜디오에 적용됐다. 1999년 호주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는 전 세계 16개 시스템 중 당당히 1위를 차지, 올림픽 경기장 전체에 아이디스의 보안 시스템이 깔렸다. 김 대표는 “그 이후로 전 세계 보안관제 시장이 급격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스에서 제공하는 제품과 솔루션. 홈페이지 캡처
아이디스에서 제공하는 제품과 솔루션. 홈페이지 캡처

환경 변화를 감지하면 과감한 결단을 내려 새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는 것이 아이디스의 성공 비결이다. 코스닥에 상장한 뒤 11년간 영업이익이 20% 밑으로 떨어진 적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아이디스가 갑자기 제조자 개발생산(ODM)에서 브랜드 비즈니스로 사업 방식을 바꾼 것도 시장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카메라 시장조차 아날로그에서 고해상도 디지털 방식으로 변하면서, 기술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기존 ODM 업체들이 나가떨어지는 걸 봤다”면서 “중국 기업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저장장치뿐 아니라 카메라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책임지는 토탈 솔루션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산업용 디스플레이와 산업용 프린터로 사업군을 확장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장기 투자를 시작했다. 성장률은 매년 높아졌지만 5년간 매출이 줄고 부채가 늘었다. 김 대표는 “올해가 터닝 포인트”라며 “브랜드 매출이 ODM 매출을 넘어서는 등 올해 3분기엔 5년여간의 투자가 결실을 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체 인력의 35~40%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는 아이디스가 요즘 가장 집중하는 분야는 AI다. 3년 전엔 AI 부서를 따로 만들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주차장에 차량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번호를 인식해 정확히 몇 층 몇 번째 칸에 들어가는지 추적해 알려주는 주차 관제 솔루션부터 마트 계산대에 몇 명이 줄을 서 있고 이를 맞추기 위해 몇 개의 계산대를 열어야 하는지 등을 계산해주는 ‘큐매니지먼트’까지, 아이디스는 이미 다양한 AI 솔루션을 갖추고 이를 납품하고 있다. 미국 아마존 고와 같은 무인 편의점 확산은 아이디스에 ‘호재’다. 김 대표는 “무인이라고 하는 건 결국 카메라와 VA가 사람의 눈과 머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주차부터 쇼핑, 계산 시스템까지 모든 정보를 한 번에 관제할 수 있는 솔루션 소프트웨어를 갖춘 건 아이디스가 독보적인 만큼,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가 20일 경기 성남시 판교 아이디스연구소에서 IP카메라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가 20일 경기 성남시 판교 아이디스연구소에서 IP카메라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 대표는 아이디스와 같이 최첨단 기술력을 갖춘 영상보안 기업이 정부 기관 사업을 맡을 길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조달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력이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제품들이 공공기관 보안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백도어 등 보안에 결함이 있는 중국산 제품들이 브랜드 이름만 바뀐 채 조달청을 통해 공공기관에 들어갈 수 있다”면서 “기술력이 갖춰진 기업들이 국내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시험해본 뒤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 세계 시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 상황이 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창업 당시 ‘기술 기반 글로벌 선도 기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김 대표의 목표는 아직 유효하다. 그는 “대기업에만 의존해서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수준은 4만, 5만 달러로 올라서기 어렵다”면서 “대기업이 건들지 않는 기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하는 업체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 중 하나가 우리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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