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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레플리카의 변신

입력
2016.11.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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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루브르박물관과 런던 내셔널갤러리에는 같은 그림이 하나씩 걸려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라는 작품이다. 어두운 동굴을 배경으로 중앙에는 성모님이 위치하고 왼쪽에는 어린 세례자 요한이, 오른쪽에는 아기 예수가 배치된 그림이다. 연구에 따르면 둘 다 진품이고 다만 내셔널갤러리의 것은 밑그림만 다빈치가 그리고 완성은 그 제자들이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 중에는 작가 스스로 또는 그 제자들에 의해 똑같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고 이를 레플리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레플리카가 해괴하게 변신하고 있다. 인터넷에 레플리카를 입력하면 수십 개의 짝퉁판매 사이트들이 검색된다. 명품 가방과 장신구들이 이제 예술품의 경지에 도달했는가 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판매자 정보와 연락처를 게시하고 버젓이 영업하고 있고 품질보증서까지 똑같이 위조해서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도 특허청의 온라인 거래 단속활동으로 압수된 짝퉁 물품은 3만8,007건으로 2011년도 1,198건 대비 30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짝퉁 문제가 온라인 시장에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활개 치는 짝퉁 판매자들이 있음에도 단속은 쉽지 않다. 대부분 대포폰과 대포통장으로 거래하고 있어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사이트 폐쇄와 운영자 체포 등 직접적인 단속이 어렵다. 단속당국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있는 짝퉁 판매업자들을 보고도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어렵게 증거확보를 하여 기소를 하여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솜방망이식 처벌은 아마도 이들이 국내 영세 소상공인으로서 생계형 범죄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첫째, 국내에서 유통되는 짝퉁 제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반입되는 물품들로서 국내산업과 관계가 없다. 최근에는 국산 제품의 짝퉁도 많이 유통되고 있어 국내 경제에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짝퉁 제품을 유통하는 이들은 영세업자가 아닌 조직화한 기업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단속으로 판매 시가 3,200억원 어치를 국내에 유통한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 셋째, 국내ㆍ외 짝퉁 판매업자들은 대부분 범죄 집단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터폴에 따르면 마약, 인신매매와 더불어 위조 상품 유통이 세계 범죄조직들의 주요 자금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짝퉁 제품은 국내 주택가에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은밀히 제조하고 있으며, 해외 공급처와 유기적으로 연계해 단속이 시작되면, 해외로 도피하는 상황이다.

짝퉁은 조직적인 범죄다. 외국에서는 짝퉁 판매자뿐만 아니라 짝퉁 구매자도 처벌하는 입법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짝퉁 구매자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짝퉁 판매를 근절하는데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적인 범죄행위 앞에서 상식과 도의적 책임을 묻기에는 그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짝퉁 유통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될 수밖에 없으며, 국내 유통 시장을 넘어 세계 경제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진품의 고유한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고, 건강한 유통으로 판매자 및 소비자의 권익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되는 것이다. 혹시 독자 중에 오늘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레플리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하기 바란다.

박성준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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