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권력 동원 방식과 온도차
“100%는 아니다” 협의 여지 남겨
은행자본확충펀드 대안으로 제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구조조정에 나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으로 회수를 전제로 한 대출 방식을 제시했다.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 출자 방식은 ‘손실 최소화’라는 원칙을 따져볼 때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출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직접 돈을 대주는 출자는 수용이 어렵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국책은행의 빠른 자본확충을 위해 출자를 선호하는 정부와는 상당한 온도 차를 내보인 셈이다.
이 총재는 5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은의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 만한 타당성이 필요하고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이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앙은행이 손해를 보면서 국가 자원을 배분할 권한은 없다”며 “한국은행법상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원칙에 비춰볼 때 한은이 돈을 찍어내 국책은행에 구조조정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출자 방식은 회수가 어렵다는 점에서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총재의 설명이다.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수출입은행 출자는 물론, 산업은행의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 인수도 에둘러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그는 “출자 방식을 100%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타당성이 있으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말해 협의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특히 이 총재는 대출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은행자본확충펀드를 제시했다.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 자본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이 펀드가 조성된 바 있다. 예컨대 한은이 특정기관에 대출을 해주고 이 기관이 자금을 펀드에 넣어 자본확충이 필요한 국책은행에 돈을 대주는 방식이다. 정부와 한은이 합의해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시행할 수 있고, 추후 대출금 회수가 가능하다. 이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민간 회사인 AIG나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을 지원할 때도 지원금 회수가 가능한 대출 방식을 주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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