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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20 12:07
수정 : 2014.02.20 23:03

[황영식의 세상만사/2월 21일] 금연 정책, 전면압박이 능사인가

등록 : 2014.02.20 12:07
수정 : 2014.02.20 23:03

점심 식사 후 가끔 다방에 들른다. 고급 커피전문점이 즐비한 도심이지만 느긋하게 담배를 물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구식 다방이 제격이다. 어차피 커피는 매개물일 뿐이어서 다른 어떤 마실 것이라도 그만이다. 세상 일에 대한 글로 먹고 사는 처지이기도 해서 온갖 얘기가 재미있고, 도움이 된다. 도심 골목길의 허름한 이 다방에 큰 변화가 생겼다. 어느새 흡연실이 따로 만들어졌다. 그 흡연실이 늘 만석이어서 기다리는 게 여간 번거롭지 않다.

올 1월부터 100㎡(약 30평) 이상의 업소에서 흡연이 금지되고, 따로 설치된 공간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된 제도의 변화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변화를 실제로 접하는 느낌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담당 공무원의 실측 결과 30평을 약간 넘어 흡연실을 따로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인 아주머니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불편을 느낀 단골손님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다방 같은 구식 업소는 중ㆍ장년 남성이 주로 이용하고, 비흡연자는 거의 찾지 않는데 왜 무차별적으로 금연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길었다. 마음 속으로 '여기 오는 것도 이제 끝'이라 생각했던 게 은근히 미안해지는 동시에 '금연' 논란이 흡연권과 혐연권(嫌煙權)의 대립 단계를 넘어 영업권 침해 여부로까지 넓혀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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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이래 37년 간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지만,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한 일련의 금연 정책에는 기본적으로 찬성이다. 담배는 즐기는 사람에게는 커피와 다를 바 없는 대표적 기호품이다. 설사 건강에 해롭더라도 개인의 자유의사로 위험부담을 선택했다면 그것을 비난할 논리적 근거가 없다. 다만 흡연권이 인정받아야 하듯, 남의 흡연에 따른 고통을 피하려는 비흡연자의 결정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더욱이 혐연권은 흡연권의 공통근거인 자기결정권에 덧붙여 간접흡연의 건강피해를 막으려는 생명ㆍ건강권적 요구도 겸한다. 따라서 두 기본권의 충돌에서는 혐연권이 우선 보호받아야 할 우월적 권리이다. 흡연권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2004년 8월 26일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의 핵심 요지도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당시 헌재의 결정에서도 보듯, 양자의 기본권 충돌은 공간의 특성에 달려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가까이 있게 되는 공간만 아니라면, 양자의 권리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법은 일률적이고 형식적 구분에 치중해 공간의 실질적 특성을 외면하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학교 운동장 바로 바깥 길은 금연구역이 아닌 반면, 인적이 드문 병원의 외진 공원도 금연구역이다. 앞의 문제는 남들 가까이에서는 되도록 담배를 삼가는 흡연자의 양식에 기대어 풀 수 있다. 이와 달리 일단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고 나면 최소한의 흡연권조차 탄력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업소의 금연구역 지정은 한층 신중했어야 했다. 영업권, 영업의 자유 침해 논란이 빚어지지 않도록 세밀하게 공간 특성을 감안해야 했다. 흡연실 설치로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은 해소되지만, 업소의 매출 감소는 피하기 어렵다. 내년 1월부터 소규모 음식점과 모든 주점도 규제 대상이 된다. 소규모 음식점은 흡연실을 둘 공간이 없고, 연신 흡연실과 술자리를 오갈 술꾼도 드물다. 매출 감소가 업소의 자율적 결정에 따른 게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크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노상금연을 도입했지만, 업소의 금연구역 지정은 자율에 맡겼다. 프랜차이즈 커피점 세 곳이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A점은 전석이 금연이고, B점은 금연석과 흡연석을 따로 두었고, C점은 흡연석만 두었다. 흥미롭게도 C점의 커피값이 가장 비싸다. 소비자는 선택권이 보장됐고, 결과적으로 A, B, C 프랜차이즈 모두 매출 감소를 겪지 않았다. 흡연권과 혐연권, 영업권의 조화로운 보장의 다른 방법도 있을 듯하다. 당국의 무관심과 민생경시가 방법 찾기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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