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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묻힐 듯…낮은 섬 가파도 자전거로 한 바퀴

입력
2017.04.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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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는 낮은 섬이다. 섬의 최고 높이가 20m 안팎에 불과하다.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배로 15분 거리, 여객선에서 보면 넘실대는 파도에 금방이라도 묻힐 듯 아슬아슬하다. 실제는 가오리처럼 펑퍼짐하지만 멀리서 보면 수평선에 일직선으로 길쭉하게 걸려있다. 오른쪽 귀퉁이에 2기의 풍력발전기만 두드러지다가 포구 가까이 가서야 해안에 알록달록 페인트칠을 한 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파도는 요즘 온통 보리 물결이다. 낮은 섬 바다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산방산이 보인다. 제주=최흥수기자
가파도는 요즘 온통 보리 물결이다. 낮은 섬 바다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산방산이 보인다. 제주=최흥수기자

가파도는 겸손한 섬이다. 마라도의 위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모슬포에서 가파도 행 배를 타는 곳은 ‘마라도 정기여객선 대합실’이다. 마라도에 관한 안내 책자는 넘쳐나지만 가파도에 관한 정보는 배 시간을 적어 놓은 게 전부다. 제주도에서 4번째로 크고 인구로도 형님 뻘이지만 ‘대한민국 최남단’ 혹은 ‘국토의 막내’라는 타이틀로 확고하게 이름을 알린 마라도의 명성에 가려졌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제주사람들은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는 섬으로 홍보한다. 풍랑이 몰아칠 때면 두 섬이 바라다 보이는 송악산에서 본섬 사람들이 (빌려간 물건을) ‘갚아도’되고 ‘말아도’되니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가파도는 자존심이 강한 섬이다. 가파도의 유일한 학교인 가파초등학교 교정엔 ‘책 읽은 소녀상’ 옆에 교가(校歌) 비가 서 있다. ‘○○산 정기’로 시작하는 흔한 노랫말 대신, 이 섬의 특징을 알기 쉽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1절은 “아침이면 붉은 해가 바다에서 뜨고 / 저녁에도 붉은 해가 바다에 지는 / 가파도는 남쪽 바다 외딴 섬”으로, 2절은 “보이는 건 넓고 넓은 하늘과 바다 / 일년 내내 바닷바람 세차게 불어 / 나무들도 크지 못하는 작은 섬”으로 시작한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과 바로 코앞에 우뚝 솟은 산방산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자존감이 묻어나는 가사에 아릿한 미소가 나온다. 교문 옆에는 작고 아담한 회을(悔乙)공원이 있다. 가파도 출신으로 항일운동에 앞장섰고 제5대 국회의원(민의원)을 지낸 김성숙의 호를 딴 공원이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제치고 당당하게 자리잡은 그의 동상도 섬의 자부심을 보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일직선이지만 실제는 가오리처럼 펑퍼짐한 섬이다.
멀리서 보면 일직선이지만 실제는 가오리처럼 펑퍼짐한 섬이다.
포구 가까이 가서야 올망졸망한 집들이 보인다.
포구 가까이 가서야 올망졸망한 집들이 보인다.
가파초등학교 교정.
가파초등학교 교정.
섬이 평평해 걷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부담이 없다.
섬이 평평해 걷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부담이 없다.

가파도는 해녀의 섬이다. 섬은 상동과 하동 2개 마을로 구분돼 있다. 상동은 여객선이, 하동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포구다. 시간이 맞으면 해녀들이 깊은 바다에서 따온 해산물을 내리고 분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가파도의 해산물이 제주에서도 으뜸이라 자랑한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안목은 없지만 크기만으로는 틀림없어 보인다. 두 손바닥에 올려도 넘치는 전복, 어른 팔뚝만한 해삼(배 부분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 홍삼이라고도 부른다), 귀를 덮고도 남을만한 소라 등은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구경거리다. 그만큼 멀고 깊은 바다까지 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채취한 해산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동마을에는 다음달 10일까지 ‘낮은 섬 가파도, 할망바다’라는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어엿한 갤러리 대신 마을의 낮은 담장이 전시장이다. ‘삶에 지치고 마음 곤해질 때마다’ 찾았던 가파도에서 해녀 ‘할망’을 만났고, 오랫동안 지켜보다 ‘한 손에 테왁을 잡고 호맹이 대신 카메라’를 든 유용예 사진가의 작품이다. 함부로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여행객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할망들의 고단함과 환희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골목을 한 바퀴 훑고 나면 포구에서 봤던 전복과 소라에서 ‘호오이~ 호오이~, 가쁘고 마른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파도 주민이 유모차에 짐을 싣고 이동하고 있다.
가파도 주민이 유모차에 짐을 싣고 이동하고 있다.
가파도 해녀가 따 온 어른 팔뚝보다 더 큰 해삼(홍삼).
가파도 해녀가 따 온 어른 팔뚝보다 더 큰 해삼(홍삼).
전복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20년은 자랐을 거란다.
전복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20년은 자랐을 거란다.
마을 담벼락에 유용예 사진가의 ‘할망바다’ 작품이 걸려 있다.
마을 담벼락에 유용예 사진가의 ‘할망바다’ 작품이 걸려 있다.
해안 곳곳에 자리잡은 할망당.
해안 곳곳에 자리잡은 할망당.
청보리밭은 곧 황금들판으로 변신한다.
청보리밭은 곧 황금들판으로 변신한다.

언제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를 바다는 친근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고, 그 흔적은 해안도로 곳곳에 ‘할망당’으로 남았다. 정성스럽게 두른 돌담이 쉼터로 착각할 만큼 아늑한 할망당에는 풍어와 무사귀환을 비는 섬사람들의 기원이 켜켜이 쌓여 있다.

요즘 가파도는 온통 보리 물결이다. 집이 들어선 곳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보리밭이다. 하동마을에서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부근은 설핏 황금색도 비친다. 4.3km 해안도로 사이사이로 농로와 마을길이 나 있어 어디를 걸어도 넓고 시원하고 평화롭다. 선착장 인근에서 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좋다. 1~2시간 돌면 섬의 구석구석까지 둘러볼 수 있다. 대여료는 1인용 5,000원, 2인용 1만원이다. 가파도행 배는 모슬포항에서 하루 8차례 들어가고, 6차례 나온다. 표를 끊으려면 신분증을 필히 지참해야 하고, 가격은 해상공원 입장료 1,000원을 포함해 성인기준 왕복 13,200원이다.

제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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