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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를 듯한 미소…텅 비어서 더 찬란한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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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를 듯한 미소…텅 비어서 더 찬란한 절터

입력
2018.04.24 18: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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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운산면 용현계곡 보원사지 5층 석탑 뒤 상왕산 자락으로 몽글몽글 봄이 피어난다. 서산=최흥수기자
서산 운산면 용현계곡 보원사지 5층 석탑 뒤 상왕산 자락으로 몽글몽글 봄이 피어난다. 서산=최흥수기자

꽃도 한철이라 변덕스러운 날씨에 봄이 끝난 줄 알았다. 둥글둥글한 나무 방망이로 부드럽게 다진 듯, 높지도 모나지도 않은 서산의 산사(山寺)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봄에 반했다. 올봄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음 해 혹은 그 다음 해라도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화려하면서도 헤프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깊이 있는 서산의 마음 여행, 풍경 여행지를 소개한다.

충청도식 유머로 세상에 드러난 ‘백제의 미소’

충청도 사람들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냅둬유, 집에 가서 개나 주게’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시유?’처럼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투에도 충청도식 유머가 철철 넘친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58년이다. 당시 홍사준(1905~1980) 국립부여박물관장이 인근의 불교 유적을 탐문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주민들은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인바위’라고 불렀는데, 한 나무꾼이 홍 관장에게 전해 준 이야기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서산시청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일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지유. 근데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쥐어박을라고 벼르고 있구만유. 근데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데 서 계심시러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지도 못하고 있지유.“

용현계곡 초입의 마애여래삼존상 가는 길에 봄빛이 찬란하다.
용현계곡 초입의 마애여래삼존상 가는 길에 봄빛이 찬란하다.
계곡 건너 이 계단만 오르면 왼편으로 바로 ‘백제의 미소’가 보인다.
계곡 건너 이 계단만 오르면 왼편으로 바로 ‘백제의 미소’가 보인다.

암벽 중앙의 본존불은 산신령이고, 우측 보살은 본마누라, 다리 꼬고 턱을 괴고 앉은 좌측 미륵은 작은 마누라로 본 것이다. 부처든 산신령이든 결국 사랑하고 시기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얽히고설킨 인간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셈이다.

삼존상이 위치한 곳은 가야산 용현계곡 초입이다. 주차장에서 산책하듯 계곡을 따라 600m 정도를 걸으면 왼편으로 작은 다리가 나온다. 거기서 가파른 돌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바로 ‘백제의 미소’와 마주한다. 지금이야 과거의 부처를 상징하는 ‘제화갈라보살입상’, 현세의 부처인 ‘석가여래입상’, 미래의 부처인 ‘미륵반가사유상’이라는 정식 명칭을 얻었지만, 불자가 아니면 나무꾼의 해석도 여전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동자승인 미륵반가사유상은 표정과 몸짓이 천진난만한 데 비해, 구슬(돌멩이)을 든 갈라보살의 표정은 질투심을 감추려고 억지 웃음을 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일까, 가운데 불상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이래도 ‘싱긋’, 저래도 ‘흐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만 가득하다.

왼쪽부터 과거 현세 미래의 부처를 표현한 마애여래삼존불.
왼쪽부터 과거 현세 미래의 부처를 표현한 마애여래삼존불.
처마 역할을 하는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뿌리를 내렸다.
처마 역할을 하는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뿌리를 내렸다.
삼존불의 미소는 아침 햇살이 비칠 때 가장 도드라진다.
삼존불의 미소는 아침 햇살이 비칠 때 가장 도드라진다.
부드러운 얼굴 윤관에 미소에도 여유가 넘친다.
부드러운 얼굴 윤관에 미소에도 여유가 넘친다.

불상의 미소는 햇볕의 방향과 그림자에 따라 바뀐다. 안내문은 그 미소가 아침에는 밝고 평화롭고,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롭다고 소개하는데, 표정이 가장 도드라지는 시간은 오전이다. 불상이 동짓날 해 뜨는 방향인 동동남 30도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암벽은 수직이 아니라 앞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고, 조각 위에 얹힌 커다란 바위가 자연스럽게 처마 역할을 해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것을 피했다. 백제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하는 마애불이 지금껏 온전하게 유지되어 온 비결이다. 바위 중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자연적인 조형미까지 갖췄다. 삼존불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산줄기는 따로 상왕산(象王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상왕은 부처를 코끼리 중에서도 가장 큰 코끼리에 비유하는 말이다.

텅 비어 더욱 충만한 절터, 보원사지

대부분 여행객은 마애삼존불만 보고 돌아서는데, ‘백제의 미소’를 제대로 느끼려면 계곡 상류에 위치한 ‘보원사지’까지 꼭 함께 둘러봐야 한다. 전성기의 부스러기만 남은 폐사지에는 보통 쓸쓸함이 짙게 드리우기 마련인데, 보원사 절터에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여백의 미는 그림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원사지는 텅 비어서 더욱 충만한 공간이다.

상왕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호위하고 있는 용현계곡 너른 터에 자리잡은 보원사.
상왕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호위하고 있는 용현계곡 너른 터에 자리잡은 보원사.
당간지주 사이로 보이는 5층 석탑.
당간지주 사이로 보이는 5층 석탑.
5층 석탑을 배경으로 제멋대로 피어난 봄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5층 석탑을 배경으로 제멋대로 피어난 봄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마애삼존불에서 용현계곡을 따라 1.2km 정도 거슬러 오르면(물론 자동차로도 갈 수 있다), 좌우로 펜션과 식당을 끼고 좁아진 계곡이 갑자기 넓어진다. 오솔길 끝에서 큰 잔디광장을 만난 느낌이다. 절터의 넓이는 10만2,886㎡, 축구장 14개가 넘는 규모다.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원사는 주변에 100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1,000여명의 승려가 수행했다고 전하는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와 고려 초에 크게 융성했는데, 특히 고려 광종(925~975) 때는 법인국사 탄문을 파견해 국가에서 관리하던 절이었다. 국사(國師)는 지덕이 높아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조정에서 내리던 칭호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보원사가 상왕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16세기까지도 사찰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2구의 철불과 금동여래입상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고, 절터에는 현재 석조(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 그릇)와 당간지주, 오층석탑, 법인국사탑과 탑비가 남아 있다.

먼저 입구에 우뚝 선 2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시선을 잡는다. 4.2m 높이의 화강석 당간지주 사이로 5층 석탑이 사찰의 중심을 잡고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지붕 돌 위에는 무게 중심을 고정하는 찰주(쇠꼬챙이)가 높이 솟아 있다. 안내문에는 목조탑에서 석조탑으로 변환되는 형식으로, 통일신라와 고려 초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끝을 살짝 들어 올린 모양의 옥개석은 백제 양식이라는 점도 덧붙여 정확히 누가 언제 세운 탑인지는 알 길이 없다. 5층 석탑을 돌아 계단을 오르면 왼편에 법인국사탑과 탑비가 위치하고 있다.

5층 석탑 뒤 상왕산 자락에 피어나는 봄.
5층 석탑 뒤 상왕산 자락에 피어나는 봄.
아직 잎이 나지 않은 감나무 뒤로 피어난 잎과 꽃을 보고 있노라면 피안의 세상에 든 것처럼 황홀하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감나무 뒤로 피어난 잎과 꽃을 보고 있노라면 피안의 세상에 든 것처럼 황홀하다.
올해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내년 봄이라도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4월 19일 상황이다.
올해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내년 봄이라도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4월 19일 상황이다.

문화재적 가치나 학술적 의의는 전문가의 몫이지만, 절터의 편안함과 아늑함은 누구에게나 전해진다. 보원사는 좌우로 높지 않은 산줄기 사이 넓은 터에 자리 잡았다. 능선도 상왕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코끼리 등처럼 부드럽고 풍만하다. 절터에서부터 경사가 완만한 산자락에는 지금 봄 단풍이 한창이다. 아직 움트지 못한 나뭇가지가 있는가 하면, 햇살에 반짝이는 여린 잎들과 제멋대로 피어난 산 꽃이 엷은 물감을 뒤섞어 놓은 듯 찬란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가 이런 모습일까. 텅 빈 절터 어느 구석을 거닐어도 황홀한 봄으로 충만하다. 여행자의 입가에도 슬며시 백제의 미소가 번진다.

벚꽃 매화 진달래…이렇게 화려한 개심사

보원사지의 봄이 꿈결처럼 은은한데 비해 개심사의 봄은 대놓고 화려하다. 사찰이 이렇게 호사스러워도 되나 싶을 정도다. 개심사는 보원사지에서 상왕산 능선을 넘으면 나온다. 등산로로 걸으면 3.5km, 찻길로는 약 15km 떨어져 있다.

개심사 경내에서 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겹벚꽃. 19일 상황이니 이번 주말이면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개심사 경내에서 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겹벚꽃. 19일 상황이니 이번 주말이면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매화 철은 끝난 줄 알았는데, 홍매화 백매화도 고운 자태를 뽐낸다.
매화 철은 끝난 줄 알았는데, 홍매화 백매화도 고운 자태를 뽐낸다.
눈길 가는 곳마다 꽃 천지다.
눈길 가는 곳마다 꽃 천지다.

주차장에서 사찰까지는 약 600m, 일부 오르막이 있지만 대체로 순탄해 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산책로에는 소나무가 많아 국내의 다른 산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경내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산 아래는 이미 봄 꽃이 떨어지고 있는데, 개심사의 봄은 이제 막 시작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우선 작은 연못 뒤로 난 계단을 오르면 막 피기 시작한 겹벚꽃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벌과 나비를 불러야 할 꽃 가지가 아래로 늘어져 교태를 부린다. 여기저기 터지는 꽃 사태에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댄다. 무량수각 앞마당을 울긋불긋하게 장식한 연등이 오히려 초라하다. 대웅전 앞 진달래 꽃송이도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풍성하고 박태기꽃 방망이는 분홍빛이 더욱 곱다. 심검당 앞 백매화와 홍매화는 조화를 매달아 놓은 듯 색깔이 선명하다. 매화 철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터라 가짜가 아닐까 의구심이 커진다. 자그마한 사찰 전체가 꽃 대궐이고 색의 향연이다. 하이라이트는 명부전 앞 두 그루 청벚꽃, 파르스름하게 초록을 살짝 머금은 겹벚꽃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명물이어서 특히 관심을 끈다.

기둥이 휘어진 심검당 앞 박태기 분홍빛이 유난히 곱다.
기둥이 휘어진 심검당 앞 박태기 분홍빛이 유난히 곱다.
대웅전 앞에서도 건물은 안보이고 꽃만 보인다.
대웅전 앞에서도 건물은 안보이고 꽃만 보인다.
개심사의 자랑 청벚꽃.
개심사의 자랑 청벚꽃.
특이하게도 꽃잎이 파르스름하다.
특이하게도 꽃잎이 파르스름하다.
수수한 창고 뒤에도 벚꽃이 흐드러져 있다.
수수한 창고 뒤에도 벚꽃이 흐드러져 있다.
휘어진 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한 범종각.
휘어진 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한 범종각.

그럼에도 봄 꽃에 가려진 개심사의 진짜 매력은 수수함과 자연스러움에 있다. 몇 채 되지 않는 전각은 크지 않고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다.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혜감국사가 창건한 충남 4대 사찰이라는 자랑이 의아할 정도다. 범종각과 심검당 기둥은 직선으로 다듬지 않고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소박하고 멋스럽다. 개심사는 또 작지만 큰 사찰이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한 대웅전(보물 제143호)을 포함해 14점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다. 사찰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차분히 되돌아보려면 이 화려한 봄날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래야 미혹됨이 없이 개심사(開心寺)라는 이름대로, 또 다른 길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까 싶다.

바닷길 열리는 풍경 여행지 간월암

서산방조제 AㆍB지구 사이 부석면 간월암은 물때에 따라 섬이 되기도, 뭍이 되기도 하는 풍경 여행지다. 암자 전체가 간월도 끝자락에 딸린 작은 섬이다. 간월도는 원래 태안 안면읍에 속했지만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부석면과 연결되면서 서산시에 편입됐다.

물이 빠지면 간월암은 육지와 연결된다. 바다 건너는 태안 안면도다.
물이 빠지면 간월암은 육지와 연결된다. 바다 건너는 태안 안면도다.
간월암 입구에 장승 조각이 세워져 있다.
간월암 입구에 장승 조각이 세워져 있다.

암자는 비좁은 바위에 올라선 형국이라 크지 않은데 아담한 자태가 바닷물에 갇혀도, 갯벌과 연결돼도 하나의 작품이다. 물이 빠지면 간월도 선착장 부근 언덕에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이때는 암자뿐만 아니라 일대 바다가 모두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갯벌과 갯바위를 오가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간월암(看月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수도 중에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수도를 마친 무학대사가 떠나기 전 앞마당에 떡갈나무를 꽂아 두며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고 말했다는데, 정작 그 자리에는 200년 된 사철나무가 가지를 넓게 펴고 자리를 잡았다. 외부에서는 이마저도 보이지 않고, 앞마당과 뒤뜰에 자란 팽나무의 윤곽이 도드라진다. 언제 보아도 편안한데, 해질 무렵 바다와 하늘이 붉게 물들면 섬 전체가 실루엣처럼 신비에 싸인다. 간월암 가는 길에는 요즘 서산시에서 가꾼 유채가 노랗게 피어 있다.

서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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