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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사전] 꼰대

입력
2015.10.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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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는 본디 선생, 혹은 아버지를 뜻하는 속어다. 내 귀에는 1970년대부터 들리기 시작했으므로 꽤 오래된 말인데 과거와 크게 다른 것은 이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다는 점과 ‘꼰대질’이란 말이 나타내듯이 화자가 선배나 직장 상사를 가리킬 때에도 쓰인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꼰대는 그저 늙은이 혹은 구세대를 뜻하기도 한다.

오늘날 상당수 아버지들이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서 품고 있는 이상적인 상이 ‘친구 같은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꼰대’란 말이 더 폭넓게 쓰이게 된 이유는 뭘까. 또, 이미 1990년대부터 학급 붕괴가 시작된 이후 선생들이 말로밖에 학생들을 ‘통치’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꼰대질’이 더 자주 언급되는 것은 왜 그럴까. 아버지들과 선생들도 젊었을 때는 그들 자신의 꼰대들 때문에 지긋지긋한 세대 간 염증을 느끼면서 그들 청춘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었는데 말이다.

제일감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장기 지속’으로 존재하는 권위주의적 헤게모니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장기 지속인 만큼 개인들, 세대들이 이 헤게모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또 더 거슬러 올라가서 말한다면, 소위 성인이나 할아버지를 문화적으로 숭상하는 유교의 영향이 계급사회 일반의 헤게모니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 전반의 ‘꼰대성’은 헬조선에 고유한 반(半)봉건성과도 통한다.

젊은이들은 다양한 사회 단위 안에서, 즉 집, 학교, 군대, 직장 등에서 꼰대질을 겪게 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군대의 경우, 상관을 특별히 꼰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 점에 주목하면, 결국 꼰대질은 말을 둘러싼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꼰대질은, 폭력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는 행사되지 않는 권위주의적 위계질서 안에서 이뤄지는 명령, 지시, 훈계, 잔소리, 충고, 조언 등에서 생겨나는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꼰대질이 특별히 더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은 직장이며, 꼰대의 반대말은 멘토다. 후배가 원할 때 어드바이스를 해주면 멘토이지만 원하지도 않는데 훈계나 충고를 길게 늘어놓으면 꼰대라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꼰대의 젠더는 원래 남성이지만, 여성 상사나 선배도 꼰대가 되어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가부장제 권위주의 시스템에서 여성이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게 가부장제적이고 순응주의적인 에토스를 내면화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해라’ 혹은 ‘하지 마라’ 등과 같은 꼰대의 말 대부분이 꼰대질로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꼰대들이 자기 경험과 사고방식을 너무 안이하게 일반화시키고 주관적으로 특권화하는 데서 비롯된다. 인생 100세 시대인 요즘 40대에서 70대까지의 사람들이 쌓아둔 인생 체험은 크게 봐서 별 거 아니다. 연공 서열적 체험에 바탕을 둔 얘기는 지혜가 아니라 지뢰일 뿐이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라는 사고방식이 자동적으로 통할 수는 없다. PC나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을 써 온 햇수만 따진다면, 후배들이 더 선배이며 아이들이 더 어른이다.

꼰대질에 내장된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순응주의, 기회주의 등이다. 이는 해방 이후의 세대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1990년대 이전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지닌 민주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등이 단지 교과서에 나와 있을 뿐이라는 점과 관련된다. 그런 가치와 지향들은 개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미시적으로 표출되거나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것은 1980년대에 ‘386’이라고 불렸던 세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름대로 권위를 스스로 벌어서 갖고 있는 사람, 예컨대 토익 만점자나 증권 투자 고수나 게임의 만렙(최고 레벨)이나 픽업 아티스트나 성형 수술에 성공한 사람들이 하고 있는 충고나 조언 등도 곰곰이 따져보면, 근거가 없고 황당하게 주관적인 경우가 제법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 얘기가 꼰대질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성공담 듣기를 우리 스스로 원해서인가 혹은 그들의 성공이 시스템 안에서의 ‘자동빵’은 아니라서인가. 아니면, 아예 이러한 물음 자체도 여전히 꼰대질에 속하는 것일까.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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