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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해 주셔서 감사” 234회 상습절도범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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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해 주셔서 감사” 234회 상습절도범의 편지

입력
2018.02.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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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여간 234회 절도

검거한 경북경찰청 광수대에 감사편지

4년4개월간 ‘절도의 생활화’… 2억 훔쳐

전국 50여 경찰관서 전담수사반 편성해 추적

휴대폰 안 쓰고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

가족 등 친지와 연락 끊어 수사망 피해

최근 경찰에 붙잡힌 절도범이 자신을 검거한 형사대에 보낸 편지.
최근 경찰에 붙잡힌 절도범이 자신을 검거한 형사대에 보낸 편지.

“체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여간 234회 2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온 상습절도범 김모(27)씨. 그가 최근 자신을 붙잡아 조사한 뒤 검찰에 송치한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경북경찰청은 전국 75개 시ㆍ군구 신도시 상가 등을 중심으로 금품을 털어온 혐의(특수절도)로 구속, 검찰에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13년 9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주로 신도시지역 상가밀집지역 내 보안이 허술한 식당이나 커피숍 등에 침입해 금고나 책상서랍에 보관중인 현금을 훔쳐온 혐의다.

김씨가 첫 범행에 나선 것은 2013년 9월쯤이다. 대전에서 고교까지 졸업한 뒤 군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종업원으로 취업한, 첫 직장인 택배회사에서다. 여자친구와 데이트자금이 궁했던 김씨는 취업 두 달 만에 통신사가 대리점 등에 보내는 휴대폰 112대, 시가 9,000여만원 상당을 훔쳤다. 서울 용산 등지에서 절반 가격에 팔아 4,000여 만원을 손에 쥐었다.

목돈을 쥐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유흥비 등으로 흥청망청 쓰다 보니 넉 달 만에 돈이 떨어졌다. 가출한 뒤 가족과 연락을 끊은 김씨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다.

2014년 초 전남 광양시의 한 커피숍과 빨래방에서 현금 5만여 원을 훔쳤다. 본격적인 절도행각이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경남 창원시 진주혁신도시에서 잡힐 때까지 짧게는 2일, 길게는 10일 간격으로 돈을 훔쳤다.

이때부터 한 번에 훔친 돈이 많지는 않았다. 적게는 몇 만원에서 가장 많은 것이 200만원 정도였다. 범행 후에는 즉시 50㎞ 이상 벗어났다. 모텔 등에 투숙한 뒤 돈이 떨어질 때까지 지냈다. 음식은 주로 배달시켜 먹었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범행에 나섰다. 이런 생활이 4년 이상 반복됐다. 범행 지역도 75개 시ㆍ군ㆍ구에 달했다.

범행대상지역과 횟수가 많다 보니 김씨는 경찰 안에서도 유명인이 된 지 오래다. 장갑을 끼지도, 마스크도 쓰지 않아 그의 인적 사항은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신고된 범행 중 그의 짓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만 130여건이다. 전국 경찰관서 55개소에서 김씨를 잡기 위한 전담반을 편성했다.

이처럼 김씨가 장기간 붙잡히지 않고 범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번도 인명을 해친 적이 없는데다 첫 범행 후 단 한 번도 휴대폰을 쓴 적이 없는데다 자가용이나 렌터카 대신 택시나 버스 열차 등 대중교통만 이용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한 그의 범죄행각도 지난해 10월부터 전담팀을 편성해 추적에 나선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에 100여일 만에 꼬리를 잡히면서 막을 내렸다.

경북경찰청은 김씨의 범죄자료를 입수, 범행 주기와 동선 등 패턴분석에 나섰다. 이를 토대로 지난달 충북 청주에 형사대를 보냈지만 하루 차이로 검거에 실패했다. 이어 경찰은 경북 김천시와 포항시, 부산, 경남 창원시(진주혁신도시)에 형사대를 2인1조씩 보냈고 지난달 30일 오전 2시14분쯤 진주혁신도시의 한 인형뽑기방에서 나오던 김씨를 붙잡을 수 있었다.

김씨는 형사대에 보낸 편지에서 “체포되기 전엔 두려웠지만 이제 가족과 다시 볼 수 있고 죄값을 치른 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며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신출귀몰한 김씨의 범죄행각과 달리 전과가 전혀 없고 사람도 해치지 않은 일종의 ‘생계형’ 절도로 보인다”며 “응분의 죄값을 치르고 출소 후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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