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교도소의 셰익스피어, 종신형 재소자들 마음 녹이다

알림

교도소의 셰익스피어, 종신형 재소자들 마음 녹이다

입력
2014.05.19 17:59
0 0

올해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탄생 45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달 26일 그의 생일을 맞아 전세계가 셰익스피어를 다시 불러내 그를 기렸다.

셰익스피어가 다시 등장한 곳 중의 하나가 흉악한 범죄자들을 가두고 있는 교도소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교도소의 흉악범들과 셰익스피어의 특별한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최근 소개했다.

셰익스피어와 교도소라는 생뚱맞은 조합을 이끌어낸 이는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영문학과의 로라 베이츠(56) 교수다. 그녀는 지난 20년 가까이 ‘수퍼맥스’라 칭하는 최고의 흉악범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전파해왔다.

베이츠 교수는 “셰익스피어는 살인범에게 그들이 감옥에 오도록 만든 자신의 선택을 검토할 수 있도록 돕고, 또 다시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교육은 단순히 수감자들에게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히고 연극을 해보라 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토대로 재소자들의 비평적인 사고를 끌어내고 분석을 통해 그 희곡들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도록 이끈다.

죄수들과 어울리는 베이츠 교수는 상아탑의 교수가 아니라 마치 이웃처럼 그들과 매우 친근해 보인다. 이는 그녀의 성장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그녀의 부모는 2차대전때 라트비아에서 건너온 피란민으로 시카고에 터를 잡고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들이 거주했던 곳은 범죄가 들끓던 악명 높은 빈민촌이었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베이츠 교수는 감옥에 있는 게 대학에 있는 것보다 편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처음엔 재활교정엔 초범이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드코어’ 죄수들은 재활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최고의 파트너들은 20년 이상 옥살이를 한 종신형 재소자였다.

인디애나주의 와바쉬 교도소는 여느 교도소처럼 악질 죄수를 다루기 위한 독방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베이츠 교수는 와바쉬의 독방 안에 있는 죄수들을 상대로 셰익스피어를 전파해왔다. 그 문장이 쉽고 달콤하진 않지만 맥베스나 오셀로, 햄릿 등이 저지른 비극을 자신의 죄와도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10년여 베이츠는 독방 죄수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가르쳤다. 죄수들은 각자 자신의 독방에서 무릎을 꿇고 음식이 들어오는 좁은 구멍에 머리를 가까이 대곤 수감실 복도에서 전하는 베이츠의 강의를 들었다.

그 독방의 재소자중 눈에 띄는 한 명이 래리 뉴튼이다. 그는 10세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렸고, 17세에 납치살인을 저질러 종신형을 받았다. 교도소에서도 그의 폭력은 계속됐고 여러 번 탈옥을 시도하기도 했다. 베이츠 교수가 와부쉬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 뉴튼은 독방에서만 10년 넘게 있었다.

독방의 죄수들 중에서 뉴튼의 비평이 가장 정곡을 찔렀다고 한다. 그의 독창적인 해석들은 일부 영문학 학술지 등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를 영접한 뉴튼은 독방에서 나갈 수 있게 됐고, 다른 죄수가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작성한 해설노트와 시놉시스 등은 다른 재소자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교재가 되기도 했다.

독방에 갇혔을 당시 뉴튼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처음 읽었을 때 맥베스에겐 정상참작할 사유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했다. “마녀나 그의 부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 주변의 영향들을 다 걷어치우고 맥베스를 자신의 행동의 결과 위에 혼자 서있게 내버려 둔다. 내 자신에게 해왔던 것처럼. 난 여전히 왜 내가 그렇게 죄를 저질렀는지 이유를 찾고 있다.”

렉스 해먼드도 셰익스피어를 만나 인생이 달라진 인물이다. 그는 2009년 출소할 때까지 12세부터 상습적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는 자신이 “차별적 접촉이론의 전형”이라며 “친구나 형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주변 행동을 통해 범죄를 배웠다”고 했다. “셰익스피어에서도 그렇다.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맥베스처럼 또 오셀로처럼 될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때론 환경이 종신형의 범죄를 저지르게 할 수 있다.”

해먼드는 출소 후 공부를 계속 해 범죄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해먼드는 자신의 인생역전은 감옥에서의 교육이 단초가 됐고 특히 셰익스피어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34세에 와부쉬 교도소에서 베이츠 교수를 만났고 그와 함께 셰익스피어를 접했다.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내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됐다. IT 등 세상의 기술은 많이 변했지만 뭔가를 원하고 욕망하는 인간의 마음은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나 똑같다.”

그는 “범죄학자들은 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찾고 있지만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왜 사람들은 죄를 저지르지 않는가를 찾았다”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그에 대한 많은 것이 담겨있다. 우리 모두는 연쇄 살인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츠 교수는 뉴튼에게서 들은 한 이야기를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전해주었다. “감옥에서 진행하는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에 참여해봤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달랐다. 왜냐고? 다른 프로그램들은 당신은 잘못됐으니 고칠 필요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 전제였다.”

뉴튼은 그리고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걸 믿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사람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믿게 됐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