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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칼럼] 안전은 돈이다

입력
2018.02.04 10: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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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ㆍ밀양 등 잇단 재해 불구 '네탓공방'만

정치권은 정쟁, 정부는 빈손 탁상행정 반복

문제는 돈...예산 구조조정 등 발상 전환해야

제천에 이어 밀양에서 대형 화재참사가 일어나면서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 여당이 정치보복을 하느라, 평창 올림픽 때문에 북한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통령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주장한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발의한 화재방지 법안을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시켜, 또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후임 지사를 뽑지 못하게 꼼수를 부려 일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은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가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어쨌든 밀양 참화에 대한 작금의 정치권의 대응은 한 마디로 이번에도 위록지마(爲鹿之馬: 사슴을 보고 말이라 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게 만들고 있다.

숱한 참사의 교훈은 ‘바보야, 문제는 안전이야!’로 압축된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에서부터 밀양까지 한 치도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말만 많을 뿐 안전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한 것이 거의 없어서다. 정부건 정치권이건 시늉은 했지만 모두 본질은 보지 못한 채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지난 정부는 안전을 중시하는 정부라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까지 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당시에도 '안전행정 종합대책'이란 게 있었으나 전 부처의 안전에 관한 행정 업무를 종합정리한 후 각각의 소제목에 ‘확대’ ‘강화’ ‘활성화’ ‘개혁’ 등을 붙인 문서였다. 그것을 보고 받은 장관은, 총리는, 대통령은 매우 흡족하며 안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은 그 이전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현실이다. 세월호 사건 직후 요란스럽게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기관에서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마저도 없어졌다.

이쯤에서 안전 선진국의 예를 한 번 보자.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때 북해의 다나 유전을 방문한 적이 있다. 헬기 전용 에어포트에서 헬기 탑승절차를 밟는데 무려 한 시간이 넘게 소요 되었다. 해상유전에 보름씩 교대로 근무하는 직원들도 매번 똑같은 안전 교육을 받아야 하며, 우주인을 방불케 하는 안전복과 안전모를 입고 써야 한다고 했다. 안전복은 차디찬 바다에서도 5시간 이상씩 떠있게 해주고, 안전모는 화재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그보다 몇 년 전 해경 헬기를 타고 독도를 갔던 때가 생각났다. 안전교육ㆍ안전복ㆍ안전모는커녕 소음을 막는 귀마개 하나만 주었다. 이 차이는 한마디로 비용이다. 그렇다. 안전의 본질은 한마디로 돈인 것이다.

우리는 고속성장의 와중에서 제대로 비용을 치르지 않은 분야가 많다. 치를 비용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고속 성장이 가능했던 셈이다. 최근의 각종 참사는 뒤늦게 그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용은 치를 생각은 않으면서 안전 불감증이나 인재 운운하며 비가 새는데 구멍 뚫린 천정 탓만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근본 원인을 따지자면 압축성장, 외형적 성장에 치우치며 안전을 도외시했던 우리의 과거에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는 안전을 강화하는데 마음을 모으지 못했고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부, 지자체, 국회, 정치권 모두 공동 책임을 통감하며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모아달라”고 했다. 올바른 문제 인식이다.

그런데 마음을 어디로 모아야 할까. 안전을 위해 뒤늦게라도 비용을 치르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결국은 기존 정부예산의 일부를 구조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누가 자기 몫을 양보 하겠는가. 이래서는 또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래도 여야는 정쟁을 접고 이 일을 해야 한다. 주무 장관은 이 일을 위해 전 부처를 닦달해, 각 부처에서 저 사람 때문에 일 못해먹겠다는 원성이 터져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 그게 안전을 확보하는 정도(正道)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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