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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상처 입은 영혼들에 따뜻한 숨결 부여

입력
2017.11.07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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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은 이야기를 통해 고통의 바다에 침례하면서 새로운 위로를 건넨다. 창비 제공
조해진은 이야기를 통해 고통의 바다에 침례하면서 새로운 위로를 건넨다. 창비 제공

고통의 바다, 그 어둡고 깊은 심연에 이야기의 그물을 드리운 채, 그럼에도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빛을 낚시질하는 어부-이야기꾼. 작가 조해진을 일러 그렇게 말해도 좋지 않을까. 확실히 그녀는 이야기를 통해 고통의 바다에 침례하면서 새로운 위로의 길을 내려는 서사적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작가다. 이야기의 가치와 상상력의 스펙트럼, 스타일의 정교한 혁신 등 여러 면에서 그녀의 낚시질은 매우 인상적이다. 소설이 쉽게 쓰일 수 없는 시절임에도 쉽게 쓰이는 소설이 많은 가운데 조해진은 결코 쉽게 쓸 수 없는 소설을 ‘잘 빚어진 항아리’처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아우슈비츠 같은 홀로코스트 현장이나 팔레스타인 같은 세계적 분쟁 지역을 넘나들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고 현장에 다가서는가 하면,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같은 역사적 상처를 반추하고, 국가 폭력의 문제성을 들추어내는가 하면, 버림받은 입양아들의 상처받은 내면, 고아원의 살풍경 등 고통의 바다에서 꿈을 낚으려 하는 이 어부-이야기꾼의 세계는 넓고 깊다. 동시대 독자들이 더불어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제재들을 탐문하여, 저마다의 상처와 영혼에 숨결을 부여하는 형상화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조해진 자신의 말법을 빌리자면 “사라진 사람들의 언어”, 그 “번역할 수 없는 먼 곳의 언어였지만, 뚜렷하게 감각되는 위로”인 그 언어를 옮기는 감각의 번역가다. ‘번역의 시작’을 비롯한 여러 소설에서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진정한 소설의 탄생이, 그 감각의 번역을 통해 가능함을 보여 준다. 인간 영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길을 낸 것도 주목에 값한다. 끊임없이 버려지면서도 오히려 떠나간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닌 인물의 꿈-사진을 통해, 우리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초극할 수 있는 21세기의 고전적 품격을 가늠하게 된다. 비루한 꿈을 곡진하게 번역할 수 있는 감각과 언어를 지닌 작가의 미덕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표제작 ‘빛의 호위’에서 작가는 환멸을 넘어서는 생명의 이야기로, 애도의 윤리가 능동적 실천으로 나갈 때 마주할 수 있는 각별한 아우라를 직조한다. 단편 안에 다채로운 서사적 레퍼토리들을 인상적인 비유와 장치들로 엮으면서, 시대정신을 관통하고 인간다움의 한 극점을 성찰하는 수준이 참으로 어지간하다.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탈민족, 초국가적 사유와 상상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야 한다는 현 단계 지구촌의 요구를 넓고 깊게 끌어안은 결실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에서, 기독교인과 이슬람인 사이에서 크고 작은 폭력과 전쟁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충돌과 폭력과 전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 일반이 지닌 유적 본질을 성찰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 일환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위해 매우 복잡하고 상당히 촘촘한 그물로, 사건과 질료를 엮어 나가려 한 스타일이 미덥다. 조해진의 이야기 낚시질이 더욱 깊어질 것임을 예감케 한다.

우찬제 문학평론가·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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