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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3불과 3NO

입력
2017.12.25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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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월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3불’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월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3불’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3불’과 ‘3NO’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는 바뀌었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에 대처하는 외교전략은 여전히 빈곤해 보인다. 미국의 압박에 밀려 뒷걸음질치다 제풀에 떨어져나간 3NO나, 중국을 상대로 기세 좋게 치고 들어가다 지뢰를 밟고 우왕좌왕하는 3불 모두 딱하긴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입니다.” 3불 논란에 불을 지핀 강경화 외교장관의 10월 30일 국회 발언이다. ‘사드 추가배치, 미사일방어(MD) 참여, 한미일 안보동맹’ 3가지는 절대 안 된다는 대국민 선언이었다. 물론 국정감사장에서, 그것도 여당 중진의원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직설로 답한 측면도 있다. “할 말을 했다”는 반응도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강 장관이 마치 프레젠테이션 하듯 정부의 패를 다 내보이면서 중국을 움직일 지렛대를 걷어차는 격이 됐다. 다음날 한중 양국은 “중국 측은 3불에 우려를 천명하고, 한국 측은 그간 밝힌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3불에 애가 타지만 우리가 순순히 응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다. 그런데 강 장관의 발언으로 도리어 빌미가 잡혔다. 이후 중국은 떼인 돈 갚으라는 식으로 역공을 펴고 있다. 때문에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는 사드가 의제에 오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3불에 앞서 정부는 3NO의 망령에 시달렸다. 국방부는 줄곧 “미국과 사드 배치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것도 없다”고 3가지를 부인하며 버티다 지난해 7월 돌연 성주 배치를 발표했다. 정부는 3NO라는 방패에 숨어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강변했지만, 3NO에 발목이 잡혀 미국에 질질 끌려 다녔고 아무런 대미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드는 끝내 뒷목을 겨누는 비수로 돌변했다. 3불이 입 방정이라면, 3NO는 면피용 수사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적절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 한반도 현안을 논의할 때면 중국측 인사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해석의 여지를 최대한 남겨놓기 위해서다. 그때마다 우리는 진의를 파악하느라 몸이 달아오르곤 했다. 이게 외교다. 얄밉고 치사해 보여도 상대에게 속내를 들키지 않고 복선을 깔아야 우위에 서고 장래에 더 큰 이익을 기약할 수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국무장관이 딴말을 하며 엇박자를 내도 눈치를 보며 휘둘리는 건 결국 우리다. 마치 작두를 타듯 작은 실수에도 치명상을 입는 게 한반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강 장관은 냉큼 고해성사를 해버리며 퇴로를 스스로 막았다. 외교는 객관식 시험이 아닐진대 3불이 옳다고 맞장구 치는 데 그쳤다. 그보다 “한미동맹은 최우선의 가치다. 사드 배치는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라고 유연하게 넘어갔다면 어땠을까. 게다가 문 대통령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드 부지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지시하면서 중국이 먼저 제풀에 지치게 만들 참호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외교수장인 강 장관은 과녁을 향해 몇 발 쏘고는 내빼는 저격수 역할에 그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더구나 강 장관의 발언은 한미가 북한 위협에 맞서 전략자산의 순환배치를 확대하기로 합의한 이틀 후에 나왔다. 손은 미국과 맞잡고 선물은 중국에 준 꼴이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신 안보전략을 통해 한일 양국과의 MD 협력을 거론했다. MD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3불이 중국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사드는 일개 포대다.” 한민구 전 국방장관이 지난해 사드 배치 발표에 앞서 국회에서 백기투항하며 실토한 말이다. 일개 포대에 불과한 사드에 3불이든 3NO든 과분한 수식어를 붙이는 건 우리 외교의 얄팍한 밑천을 드러내는 자충수나 다름없다. 더 이상 사드에 휘둘리지 않는 내공 충만한 한국 외교를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김광수 정치부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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