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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6.01.04 20:00

[이계성 칼럼] 대화의 문을 열었다지만

등록 : 2016.01.04 20:00

北 신년사 8ㆍ25합의 역행 南 비난

체제불안 심해 열린 문으로 못 나와

유연한 변화 이끌 과감한 조치 필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새해를 맞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가 되면 늘 남북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 전망이 어느 때보다 암울한 상황이어서 올해는 그런 기대가 한층 더하다.

우리 내부 어디에도 경제난을 풀어갈 동력이 보이지 않고 잘 나가던 수출마저 급격히 꺾였다. 북한과 북한을 디딤돌 삼은 북방이 유일한 돌파구라는 얘기가 더욱 절실하게 들리는 요즘이기도 하다.

새해 벽두부터 돌아가는 기류는 그리 좋지 않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북남 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며 일단 대화의지를 밝히긴 했다. 하지만 남한당국이 8ㆍ25합의에 역행하여 자신들의 체제변화와 제도통일(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면서 남북간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켰다는 비난이 더 강했다. 지난해 12월 8ㆍ25합의에 따른 차관급 당국회담에 앞서 강조했던 분위기 조성 요구와 같은 선상이다.

물론‘핵억제력 강화’나‘핵ㆍ경제발전 병진노선’과 같은 핵 관련 언급이 없고 경제건설을 앞세운 점 등은 긍정적이다. 군사 도발보다는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에 중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 신년사에는 우리 정부가 기대해 온 핵 포기나 개혁개방을 향한 의지는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 집단주의 위력, 수령의 영도 등 공고한 수령체제 고수를 뒷받침하는 표현들이 가득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김정은 체제가 유연하게 변화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이런 김정은 체제를 향해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놓고 평화통일의 한반도 시대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 자세로는 김정은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음은 명백하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비집고 들어와 자신들의 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이어 최근에는 인권문제를 둘러싼 대북 압박도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의 조치 이상으로 문호를 개방하기 어렵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재개를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상응하는 조치에는 난색을 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정부는 우리 정부대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 등에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당한 규모의 현금이 흘러 들어가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틀에 갇혀 있는 한 남북관계는 고착상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핵과 미사일 문제도 해결의 출구를 찾기 어렵다. 북한은 그 동안 유엔안보리 결의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핵 능력을 계속 키워왔다. 핵탄두 소형화 경량화에 이어 머지않아 수폭실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마당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부터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을 앞세워 대북변화를 유도했지만 얻어낸 게 없다. 그 사이 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이제 4년 차다. 올해마저 흘려 보내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북한이 원하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선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보여줬던 수준의 체제인정이 필요하다. 핵 문제도 동결을 당면 목표로 하되 단계적으로 감축ㆍ폐기 수순을 밟는다면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많이 양보하는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핵 문제 해결과 인권문제 개선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그게 바른 길이다.

물론 우리정부 힘만으로는 어렵다. 미국과 중국 등 6자회담 나머지 참가국들과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런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우리정부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에 과연 그런 역량이 있는지 걸리긴 하지만. 또 하나 박 대통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는 국내정치 상황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쏟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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