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편집국에서] 기억교실에서 본 기억의 의미

입력
2016.02.28 20:00
0 0
경기 안산시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기억교실)의 문에 "우리의 교실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기억교실은 세월호의 비극과 그 이후 2년의 시간을 함축한 기억의 성소가 됐다. 안산=김희원기자 hee@hankookilbo.com
경기 안산시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기억교실)의 문에 "우리의 교실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기억교실은 세월호의 비극과 그 이후 2년의 시간을 함축한 기억의 성소가 됐다. 안산=김희원기자 hee@hankookilbo.com

선생님 곯려먹기가 허용되는 만우절에는 빨간 동그라미, 3일은 결핵검사 하는 날, 둘째 넷째 금요일은 동아리, 28일은 학생회장 선거, 그리고 15일 화요일부터 18일 금요일까지가 하트로 표시된 수학여행이었다. 2014년 4월 달력은 그 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교실 게시판에는 4월 급식메뉴가 붙어있고, 책상에는 자리 주인의 사진과 꽃다발, 그리움을 담은 메모지들이 놓여있다. 1년 전에 비하면 유품들은 많이 정리된 상태였다. 지난해 겨울엔 언제든 주인이 돌아오기만 하면 따뜻하게 해주겠다는 듯 두툼한 외투와 슬리퍼, 담요 등이 자리에 있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에 졸업을 축하하는 꽃다발과 조화가 책상에 놓여 있다. 안산=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경기 안산시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에 졸업을 축하하는 꽃다발과 조화가 책상에 놓여 있다. 안산=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8일 찾아가 본 경기 안산시 단원고 기억교실(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교실)은, 그렇다고 2014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춘 박제화된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뒤 약 2년의 시간이 압축된 역사의 현장이었다. ‘너무 춥고 무섭지만 버티고 있으면 해경들이 구하러 올 거에요’라고 조심스럽게, ‘과제: 꼭 돌아오기’라고 아무렇지도 않는 듯, ‘다친 건 괜찮으니 살아만 있어’라고 간절하게 선후배들이 남긴 글들은 참사 직후의 절절한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시신 수습이 6개월 넘게 이어지는 동안 쓰여진 ‘제발 돌아와 주세요’라는 메시지는 이제 다른 의미를 전달했다. 2015년 8월 학교를 찾은 한 선배 졸업생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게’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미안해 했다. 사실 미안해 하는 건 그만이 아니었다. 대체로 아무 잘못이 없을 이들이 미안하다고 했다. 최근 졸업식 후 그리운 친구 자리를 또 찾아와 ‘열심히 살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은 필시 함께 세월호를 타고 가다 천만다행 살아 돌아온 학생 중 하나이리라. 그렇게 이 교실의 주인공들은 남은 가족,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가족과 친구 선후배들이 희생된 학생들을 매개로 교감하며 함께 교실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안산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반응은 "꼭 돌아오라"는 것과 "보고 싶다"는 글귀들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안산=김희원기자 hee@hankookilbo.com
안산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반응은 "꼭 돌아오라"는 것과 "보고 싶다"는 글귀들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안산=김희원기자 hee@hankookilbo.com

애초에 추모행위란 산 자들을 위로하는 것이고, 역사 기록 역시 후손들이 교훈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기억교실을 필요로 하는 것도 결국 살아남은 이들이다. 분명 지역 주민에게는 신입생을 위한 학교가 필요하지만, 이미 기억교실은 희생자 유가족이나 신입생들만의 것이 아닌 게 돼 버렸다. 서울 전주 상하이 홍콩에서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미안하다는 외침이 그 곳에선 울리고 있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1,000마리 학을 접어 보내며 서툰 한국어로 그 의미를 전한 20대 일본 여성도 있었다. 제도의 허점과 직무유기에 의해 벌어진 이 참사는 우리 국민 그리고 동시대인이 기억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기억교실은 보여주는 것이다.

기억교실을 둘러보면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극에 대해 느끼는 연민이란 게 이런 것임을 절감한다.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이라는 점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기억교실은 역사기록관이나 종교적 성소와도 같다. 잊지 않음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곳, 아니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어쩌면 그것이 기억교실이었다. 최근 기억교실 존치 문제를 놓고 학부모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자 한 단원고 졸업생은 “우리에게는 생명이 이윤보다 먼저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깨우쳐 줄 수 있는 교육과 성찰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아직 바닷속에 잠겨 있는 세월호 선체와 함께 참사의 가장 큰 상징인 교실을 아무런 사회적 고민이나 논의 없이 철거돼선 안 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단원고는 29일 기억교실 존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존치할 것이냐 보존할 것이냐 하는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다. 이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받아들이는 태도, 거기에 기억교실의 의미가 있다.

김희원 사회부장 hee@hankookilbo.com

일본 오사카 여성이 보내온 1,000마리 학과 한글 편지가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 복도에 걸려있다.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연민이야말로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감정일 것이다. 안산=김희원기자 hee@hankookilbo.com
일본 오사카 여성이 보내온 1,000마리 학과 한글 편지가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 복도에 걸려있다.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연민이야말로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감정일 것이다. 안산=김희원기자 h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