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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권교체, 행복하십니까

입력
2017.10.12 12: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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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대통령 선거는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이승만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의 접전으로 시작되었다. 신익희의 급사로 진검승부는 없었지만, 56년 대선은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상반된 기대를 남겼다. 당시 민주당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로 국민의 폭발적 호응을 얻어내자 이승만 정권은 “갈아봤자 더 못 산다”라는 프레임으로 맞섰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정권교체를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한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국민의 염원대로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못했을 때 국민은 자신이 지지했던 그 집단을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삼는다.

출범한 지 반년도 안 된 정부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적폐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이 인내심을 갖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국민은 지금 당장 가시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난 9년 동안 국가기관이 자행한 인권유린과 권력형 비리에 대한 적폐청산은 정권교체를 바랐던 인내심 많지 않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정의가 바로 서는 적폐청산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퇴행적 시도”였던 적은 없다. 역사에서 “퇴행”은 화합이라는 정치 공학을 이유로 과거의 잘못을 덮어버렸을 때 나타났다. 적폐청산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시도를 보면서 국민은 이제야 나라가 나라다워진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적폐청산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며 정권을 교체했던 국민이 염원하는 최종 목표가 아니다. 무엇을 위한 적폐청산인가. 만약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넘어 국민의 삶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늦어도 2020년 4월 총선에서 청산되었어야 할 적폐세력이 개혁세력으로 둔갑한 ‘정권심판 프레임’과 맞서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국민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난 9년 동안 보수 정부가 외쳤던 성장을 통한 분배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불평등이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크든 작든 경제성장의 성과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교역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세계무역 성장률이 이미 세계 국내총생산 증가율보다 낮아진 상황에서 수출이 홀로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수출 독주체제는 한국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소비가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업의 처지에서 보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임금과 세금은 낮으면 낮을수록 좋은 비용이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이 노동력 절감을 위해 자동화에 열을 올리고 증세에 반대하는 이유도 자신들의 성장이 점점 더 국내 소비와 무관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제조업의 로봇 밀도는 독일 일본 미국 스웨덴을 제치고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고, 국민부담률은 OECD 최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은 단순히 임금을 높이고, 복지를 확대하고,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혁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질 높은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이 숙련 노동력에 의존하고, 이렇게 생산된 상품의 소비가 내수에 의존할 때 임금 인상과 복지를 위한 증세는 국가 경쟁력을 낮추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체제란 생산, 분배, 소비가 하나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일하는 사람들의 조직된 힘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의 이야기처럼 결국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사람 중심의 국가 비전을 제시할 때 어렵겠지만 국민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 성과를 기다릴 수 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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