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범법자로 몰렸지만 소아당뇨 환아들 위해 용기 냈어요”

알림

“범법자로 몰렸지만 소아당뇨 환아들 위해 용기 냈어요”

입력
2018.07.05 04:40
11면
0 0

 

 소아당뇨 엄마, 미허가 기기 수입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검찰 고발 

 식약처서 마침내 허가 ‘오명’ 벗어 

 “정부가 의료 사각지대 없애줬으면” 

 

지난 3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소아당뇨 등 희귀질환에 대한 의료기기 관리 제도 방안' 토론회에서 1형당뇨 환아의 엄마 김미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김씨 제공
지난 3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소아당뇨 등 희귀질환에 대한 의료기기 관리 제도 방안' 토론회에서 1형당뇨 환아의 엄마 김미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김씨 제공

2012년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1형당뇨(소아당뇨) 진단을 받은 정소명(9)군의 엄마 김미영(41)씨. 그는 아이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저혈당 쇼크를 막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는 일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채혈의 고통에 찡그리는 아이 얼굴을 마주하며 감내하기를 2년여. 2014년 초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우연히 피를 뽑지 않고도 신체에 부착한 기구를 통해 24시간 혈당을 측정해주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알게 됐고, 해외 판매사 수십 곳에 측정기의 구입ㆍ배송가능 여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2014년 10월 겨우 덱스콤사의 ‘G4’를 체코에 위치한 판매사를 통해 한국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김씨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측정된 혈당 데이터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주는 전송기를 직접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경력 덕분이었다. 이후 비슷한 처지의 소아당뇨 환아들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국내 온라인 카페에 G4 구입방법과 변환기 제작법을 게재했다. 전국 곳곳의 소아당뇨 환아 부모들이 기기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김씨를 찾았다.

소명군을 비롯한 많은 소아당뇨 환아들은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한 후 눈에 띄게 밝아졌다. 김씨는 “아이는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해 채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부모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 보면서 아이가 혹시나 저혈당 쇼크를 겪지 않을까 두려워 이런 저런 활동 하는 것을 막아서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아이들의 변화를 확인하자 덱스콤을 비롯한 해외 기기제조업체에 “연속혈당측정기를 한국에도 출시해달라”는 호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업체들은 “한국 시장이 적기 때문에 진출 효율이 떨어진다”고 재차 반려했지만, 김씨는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을 때마다 직접 만나 한국 당뇨 시장의 전망을 설명하는 등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김씨는 별안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됐다. 올해 3월에는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허가 받지 않은 의료기기를 불법으로 수입하고 별도의 변환기를 불법으로 제작해 배포한 혐의다. “고발 사실을 알게 된 즈음 역설적이게도 메드트로닉사의 연속혈당측정기가 식약처로부터 첫 허가를 받았지요.”

김씨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변호사시민단체인 ‘스타트업법률지원단’이 변론에 나서줬고, 지난달 29일 서울서부지검은 김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검찰은 “혐의는 인정하지만 김씨가 별다른 이익을 얻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덱스콤사도 한국 진출을 확정해 현재 ‘G5’라는 모델이 식약처의 허가 심사를 받고 있다. 식약처는 국내 대체 치료수단이 없는 의료기기의 경우 자가 사용 목적으로 확인서를 발급받아 수입ㆍ사용할 수 있도록 현행법도 바꿨다. 김씨는 4일 “그 때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 소명이와 환아들이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없었을 것 같아 아찔하다”며 “의료 사각지대를 정부가 먼저 나서 적극 발굴해줬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