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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나의 꼰대 탈출 도전기

입력
2018.01.04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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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2018-01-03(한국일보)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2018-01-03(한국일보)

<경고: 닭살 주의>

‘까똑’. 그녀가 135일 만에 말을 걸었다. 눈물로 이별한 그녀. 넉 줄짜리 글에 박힌 낱말 두 개가 낯설고 설렜다. 20대 미혼 여성이 처자식 딸린 40대 중반 배불뚝이 나더러 ‘운명’이라니, 나를 만난 게 ‘행운’이라니. 2017년 12월 30일 오후 1시쯤, 그녀의 달뜬 심장이 내게 날아왔다.

눈에 밟혀 몇 끼니 사준 게 전부, 눈 바라보며 얘기 들어 준 게 일부였다. 빈말이 될까 봐 ‘나도 그랬지’ 내 자신에게 속삭인 뒤에야 “잘 될 거야” “꼭 붙을 거야” 꾹 눌러 말했다. 인턴 기자던 그녀는 언론사 불합격 소식을 전하며 ‘조만간 좋은 소식’을 다짐하고 떠났다. 그런 그녀가 내가 추천한 책 덕에 모 언론사에 드디어 합격했다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쌤, 팬심 고대로 품고’ ‘선물 받은 반팔 티는 겨울에도 잘 입고 있어요’ ‘기자 생활에 든든한 버팀목’…. 약속이나 한 듯 제자와 후배들의 낯간지러운 신년 메시지가 세밑을 울려댔다. ‘꼰대는 되지 말자’는 2017년도 목표를 이룬 걸까, 한 해를 헛살지 않았다는 안도와 영혼 세탁에 성공했다는 교만이 싹텄다.

내친 김에 편파적인 자체 검증에 나섰다. 후배 10여명에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꼰대인가?’ 100%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유는 뭔가?’ 대부분 ‘얘기를 들어 준다’를 꼽았다. 아니 이렇게 쉬울 수가. ‘편지 써주는 꼰대는 없다’ ‘근거 없이 비난하지 않는다’ ‘자기 주장(일정한 시각)만 관철하지 않는다’가 뒤를 이었다. 일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질문들 자체가 꼰대스러운 거 아닌가’ 물었다. “꼰대는 애초 묻지 않는다”는 면죄부를 얻었다.

노력의 보답이라 여겼다. ‘꼰대 아님’ 인증을 따기 위해 소소한 몇 가지를 1년간 당나귀마냥 실천했다. 내가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인, 반목으로 꺼진 ‘관계의 싱크홀’을 더 만들지 않기 위해.

1. 내가 갑(甲)인 단체 대화방은 이유불문 만들지 않았다. 업무 시간 이후엔 말 걸지 않았다. 호칭에 감정을 얹지 않았다. 답답해도 상사 놀이는 오프라인으로 족했다. ‘죄송하다’는 대답이 하도 많아서 못 하게 했다. 한때 ‘죄송하면 부모님께 안부 전화하라’고 했으나 선의로 포장한 강요 같아 관뒀다.

2. 자초지종부터 물었다. 일의 선후를 재단했다가 되레 사과해야 했던 기억이 많아서다. 내가 틀렸는지 자문했다. 시간을 두고 감정을 덜어낸 후에 책임을 물었다. 후배가 아무리 못해도 칭찬거리 한 개를 떠올렸다. 한숨 대신 노래를 흥얼거렸다. 피드백은 반드시 그러나 간단히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두 번 얘기하면 무조건 들어주려고 노력했다(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참조).

3. 고기는 내가 구웠다. 회식은 후배들이 원하면 했다. 건배사는 하지 않았다. 가급적 눈을 맞추며 들었다. 뒷담화는 회식 중간에 시간을 정해 신나게 한 뒤 싹 잊었다. 버스 타고 집에 갔다. 귀가 도중 기분에 취해 문자 같은 거 보내지 않았다.

욕설과 독설을 후배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라 착각했던 내 안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도전은 초등 4학년 아들이 부추겼다. 대화의 본질, 말의 참뜻, 나도 틀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줬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자, 같이 부르자. 인디언이 춤춘다 야호 야호~.”

“아빠 틀렸어요.”

“에이, 박자 음정 다 맞아.”

“인디언이 아니라 네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이라고요.”

우리 부자는 그 뒤 유식하게 합창했다. “네티브 아메리칸이 춤춘다 야호 야호~.”

외국 신문에 ‘세상의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공개 질문이 실렸을 때 가톨릭 사상가가 짤막한 답신을 보냈다고 한다. ‘담당자에게, 그건 바로 나입니다. G.K.체스터턴 드림.’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당신은 외쳐도 좋다. “도전~ 꼰대 탈출!”

고찬유 사회부 차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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