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은 야구에도 있다. 공이 빠르지는 않더라도 스트라이크 존을 꽉 채우는 투구와 상대 타자의 허를 찌르는 볼 배합으로 얼마든지 수준급 투수가 될 수 있다. KBO리그의 대표적인 예로는 두산 유희관(31)이다. 유희관은 시속 130㎞대의 직구로도 2013년부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챙겼고, 올해도 벌써 8승을 거뒀다.
경동고의 에이스 박병준(3년)은 마치 유희관을 연상시켰다. 그는 1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 세광고와의 경기에서 선발 윤정섭(3년)이 초반 난조를 보이자 1회 1사 후부터 마운드에 올라 8⅔이닝 4피안타 3볼넷 1실점 역투를 펼쳤다. 팀은 박병준의 안정된 투구 덕분에 5-3 역전승을 거뒀다.
박병준은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코스를 잘 활용해 상대 타선을 잠재웠다. 직구 최고 시속은 134㎞에 그쳤지만 정교한 제구와 슬라이더, 커브를 섞어 던졌다. 또 야수들의 든든한 호수비를 등에 업고 더욱 자신 있게 공을 뿌렸다. 강현철 경동고 감독은 “경기 초반 어렵게 풀어갔는데 박병준이 잘 버텨줬다”며 “야수들도 좋은 수비로 박병준을 도왔고, 선수들 전체적으로 칭찬하고 싶은 경기를 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박병준은 “고교 마지막 대회라 더욱 집중하고 공을 던졌다”면서 “상대 중심 타자가 강하다고 해도 내 공을 던지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상대 타자들이 초구에 직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 변화구로 패턴을 바꿔 던졌던 것이 효과를 봤다”고 호투 비결을 설명했다.
KIA 양현종을 닮고 싶다는 그는 “직구로 삼진을 잡는 장면이 참 멋있다”며 “나도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찌르는 직구로 삼진을 잡는 게 자신 있고, 나의 강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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