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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초보자를 위한 미식 가이드

입력
2016.07.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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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미식회’ 2세대 평양냉면집 어디가 맛있나

구수한 육향과 서걱이는 메밀이 근본을 이루는 평양냉면.
구수한 육향과 서걱이는 메밀이 근본을 이루는 평양냉면.

국론 분열이 한국인의 취미인 걸까. 음식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그러하다. 탕수육 찍먹(소스 찍어 먹기), 부먹(부어 먹기) 논란에 이어 간만에 덩어리 큰 이슈가 국론 분열의 도마에 올랐다. 평양냉면을 둘러싼 ‘면스플레인(평양냉면 먹는 법에 대해 거들먹거리며 설명하는 것을 비웃는 말)’ 논란이다. 하지만 탕수육 때와는 본질이 다르다. 찍어 먹을 것인가, 부어 먹을 것인가는 평양냉면이냐, 함흥냉면이냐와 궤를 같이 하는 양자 택일의 문제다. 지금 일부 호사가들 사이에 불똥이 튀는 평양냉면의 국론 분열은 각각 한 마디로 압축된다. “이렇게 해야 맛있다!”와 “잘난 척하지 마라!”

평양냉면, 서브컬처에서 대중문화로

건담을 두고 누군가는 ‘일본 로봇 만화’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0083’ ‘F91’ ‘ZZ’ ‘HG’ 같은 기호들을 머릿속에 나열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누군가는 ‘잠 오는 고급 음악’이라고 삿대질하지만, 누군가에겐 모차르트나 베토벤이요, 혹은 말러, 프로코피에프다. 명동의 곰탕 명가 ‘하동관’을 두고 누군가는 ‘일찍 문 닫는 비싼 곰탕집’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또 ‘15공’ ‘20공’ ‘25공’ ‘통닭’ ‘냉수’ 같은 암호들을 떠올린다. 보편적인 세계와 ‘덕후(‘오타쿠’에서 나온 한국식 은어)’의 세계가 만나는 방식이다. 안에서는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점점 좋아지는 애끓는 대상이지만 밖에서 보면 이해할 맘이 들기보다는 혀를 차기가 더 쉽다. 안과 밖이 다르다 보니 안에서는 더더욱 똘똘 뭉쳐 애정을 독려하고 지식을 설파하면서 바깥을 배격한다. 세계를 보는 방식이 다르기에 충돌한다. 안팎이 서로를 발견했을 때, 피차의 자존감과 피해의식을 담보한 치킨 게임이 시작되곤 하는 이유다.

평양냉면 역시 마찬가지다. 평양냉면 매트릭스 안의 ‘뉴비’(신참 입문자)들에게 ‘면을 가위로 자르지 말라’든가 ‘가장 먼저 그릇을 들고 육수를 들이켜라’는 면스플레인의 대표적 래퍼토리들은 그대로 ‘명심보감’이 된다. 그 금언들을 어깨너머로 주워 들은 얘기처럼 달달 외우기만 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이유를 규명하며 온전히 ‘명심보감’을 뗀 후엔 ‘의정부 계열’ ‘장충동 계열’의 족보를 외는 게 기본편이다. 평양냉면 집들의 맛을 각기 구분하는 분별력은 물론, 평양냉면 사진만으로도 어느 집인지 대번에 구분할 줄 알아야 비로소 ‘입덕(덕후가 됨)’할 수 있었다. 나아가 매트릭스 지도자의 자리에까지 오르자면 어느 집이 냉면 가마의 분창 노즐을 언제 교체했는지, 새로 온 면장이 팔목 부상을 입었는지 말았는지 등 시시콜콜한 실시간 정보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한다. 각종 취미 분야의 서브컬처 무리들, 말하자면 동호회마다 생성되곤 하는 덕후 성장 가이드라인 그대로다.

로스옥 청담점에서 ‘냉면미식단’ 음식 칼럼니스트 김작가와 박준우씨가 평양냉면을 시식하고 있다.
로스옥 청담점에서 ‘냉면미식단’ 음식 칼럼니스트 김작가와 박준우씨가 평양냉면을 시식하고 있다.

그렇다. 평양냉면은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몇몇 노포가 노년층 고객과 그 가족들을 단골로 장사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식이었다. 거기에 피 끓는 덕후들이 삼삼오오 가세한 정도였다. SNS가 확산되는 동안 몇몇 연예인과 인플루언서(SNS에서 영향력 있는 개인)들이 평양냉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더욱 광범위한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올해 양상을 보면 평양냉면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방송에서까지 섹시한 주제로 활약 중이다.

그리하여 평양냉면이 서브컬처를 벗어나 오버그라운드의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려는 참이다. 면스플레인 논란은 덕후 문화가 대중문화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화 충돌이다. 덕후 시장에서는 애정과 지식을 근거로 한 수직적 위계가 성립하지만, 대중 시장은 만인 평등의 민주성을 지향한다. 덕후 세계에서 받던 찬사는 사바세계에서 기피의 대상이 된다. 서브컬처 특유의 종교적 애정과 그 애정에 경기를 일으키는 불특정 다수 대중이 활발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일견 답 없고 피로한 논쟁이지만, 멀리 보면 되레 건강한 소식이기도 하다. 음식으로서 평양냉면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평양냉면 시장은 외연 확장을 겪고 있다.

노포와 어깨 견주는 평양냉면 대거 등장

진미평양냉면에서 평양냉면이 나오길 기다리는 냉면미식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작가, 윤성호, 이해림, 박준우씨.
진미평양냉면에서 평양냉면이 나오길 기다리는 냉면미식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작가, 윤성호, 이해림, 박준우씨.

평양냉면의 서브컬처 시대를 이끌던 노포들은 종교적 지지자들을 품고 경쟁인 듯 경쟁 아닌 안정적인 시장 환경에 놓여 있었다. 우래옥, 봉피양, ‘의정부 계열’로 불리는 의정부 평양면옥, 을지면옥, 필동면옥, 본가평양면옥, 그리고 ‘장충동 계열’로 불리는 장충동 평양면옥, 논현동 평양면옥, 그리고 도곡동과 분당,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평양면옥에 을밀대와 평래옥, 유진식당과 부원면옥까지를 대표적인 노포로 흔히 꼽는다.

2세대라 칭할 수 있는 신진 평양냉면집들은 광명의 정인면옥과 판교 능라도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을 당겼다. 평양냉면 덕후들을 짧은 여행길에 오르게 했던 이들은 각각 여의도와 역삼동에 분점을 내고 접근성을 높였다. 고깃집들도 도전에 나섰다. SG다인힐의 로스옥(양재점, 청담점), 배꼽집(논현점, 상암점)이 고깃집에서 기대하던 수준 이상의 평양냉면을 내놨다. 배꼽집의 주방장 겸 사장은 봉피양에서 20여년동안 일하다 독립했다. 올해 3월 개업과 동시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진미평양냉면의 주방장이자 사장도 의정부 평양면옥에서 3년, 논현동 평양면옥에서 15년간 일하다 독립했다. 가족이 나눠 가진 분점으로 이어지던 평양냉면 유전자가 독립으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특이한 냉면도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버섯 향이 강한 공덕동 무삼면옥, 무미에 가까운 맛을 추구하는 합정동 동무밥상이다. 삼성동 봉밀가는 평양냉면이 아닌 ‘평양메밀물국수’라는 메뉴명대로 남다른 개성을 뽐내는 집이다.

이들 새로운 세대의 평양냉면집들은 자신만의 평양냉면을 규정하고 독자적인 맛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평양냉면을 둘러싼 국론 분열의 왁자지껄한 화제몰이는 평양냉면 시장의 외연을 더욱 대차게 확장시켜주고 있다. 사실 분열된 국론은 냉면 세계 신구(新舊)의 사정이다. 강 건너 불 구경하는 입장이라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다. ‘냉면미식회’를 열어 당찬 2세대 냉면집들을 맛보고 평가했다. 자, 새로 생긴 평양냉면집들은 어디가 맛이 좋을까?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장기평 포토그래퍼(Afr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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