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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침대 배달 오는 날인데…” 개인사에도 재택근무 OK

입력
2017.06.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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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아닌

업무 결과물로만 직원들 평가

업무 공백 없도록 제출한 근무 표

인사관리팀만 자세히 볼 수 있어

‘디지털 강국’ 한국은 왜 못하나

4차산업 시대 맞는 새 시스템을

네덜란드의 명문 경영전문대학교인 니엔로드경영대에서 5년 동안 풀타임 정규직으로 일한 김윤영(40)씨는 입사 초기 일주일 중 3일 동안 재택근무를 했다. 사무실과 집이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다국적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두 나라 근무 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로 재택근무를 꼽았다.

“출근에만 1시간 30분 넘게 걸려 사무실 왔다 갔다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요.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했더니 팀장이 별 말 없이 오케이 하더군요. 편의상 요일을 정해 놓긴 했지만 그때 그때 필요할 때 집에서 일하겠다고 하면 사전 논의를 통해 조정도 어렵지 않았어요.”

니엔로드경영대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직원들이 회의를 겸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대부분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샌드위치나 과일 정도로 간단히 해결하는 게 눈에 띈다. 니엔로드경영대 제공
니엔로드경영대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직원들이 회의를 겸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대부분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샌드위치나 과일 정도로 간단히 해결하는 게 눈에 띈다. 니엔로드경영대 제공

네덜란드에서 재택근무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서’ ‘오늘 배관수리공이 올 예정이라’ ‘주문한 침대가 오늘 배달된다고 해서’ 심지어 ‘며칠 계속 외근을 했더니 오늘 하루 집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등 한국이라면 용납되지 않을 이유라도 동료들만 이해하면 얼마든지 받아들여진다.

집중력 필요한 일은 집에 가서 해라

오히려 재택근무를 적극 권하기도 한다. 니엔로드경영대의 쿤 반 니프트릭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총괄 팀장은 “자료를 찾아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처럼 혼자 집중해야 하는 업무는 팀원들에게 집에서 하도록 권장합니다. 업무 성격에 따라 재택근무가 더 효율적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김씨도 학교를 해외에 홍보하는 일을 맡으면서 시차가 있는 해외에 연락할 때는 재택근무를 한다. 사무실보다 집에서 일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에선 비가오나 눈이오나 사무실에 나가야 하고 상관들은 직원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언제 일을 하나 불안하기만 하지만, 네덜란드는 특유의 실용적 마인드가 강고하다. 직원들은 어디서 일하건 결과물만 내면 된다. 회사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의 양보다 그 결과물을 보고 직원을 평가한다. 김씨는 “팀장이든 누구든 집에서 일을 하는지 노는지, 정확히 일을 몇 시간 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결과물로 말하라는 거죠. 일에 집중이 안 되면 다른 집안일을 하다가 늦은 밤 일을 해도 상관 없어요.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은 낮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아이가 잠들고 난 뒤에 일을 하기도 하구요.”

재택근무라는 근무시스템은 공정한 업무성과 평가, 상관-부하직원 사이의 수평적 관계 등 직장문화 전반의 변화와 함께 가는 셈이다. 김씨는 “직원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대신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가 분명히 책임을 져요. 일이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으면 시키지 않아도 일을 더 하게 되죠”라고 말했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 병원을 데려가야 한다든지 하는 돌발 상황도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 눈치 볼 것 없이 상관에게 연락해 근무를 조정해 해결한다. 니프트릭 팀장은 “직원 개인의 다급한 사정은 개인은 물론 조직의 업무 효율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으로서는 직원의 입장에서 해결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죠”라고 설명했다.

니엔로드경영대 직원 근무 관리 시스템 화면. 알록달록 색깔로 직원들의 근무 요일과 시간을 구별해 두고 있다. 니엔로드경영대 제공
니엔로드경영대 직원 근무 관리 시스템 화면. 알록달록 색깔로 직원들의 근무 요일과 시간을 구별해 두고 있다. 니엔로드경영대 제공

공백 없도록 근무관리 시스템 필요

직원마다 근무 스케줄은 제각각이고 재택근무까지 활발하다 보니 여럿이 함께 해야 하거나 촌각을 다퉈 인수인계해야 할 업무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은 재택근무가 활성화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대부분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직원들이 1개월 앞서 다음달 자신이 몇 시간을 언제 근무할 것인지를 미리 써 내도록 한다. 이를 ‘자율 근무교대표’라고 한다.

직원들이 써 낸 근무교대표를 분석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니엔로드경영대는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에 의뢰해 근무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사관리팀 담당자용 페이지는 알록달록한 색깔로 부재, 병가, 육아휴직, 휴가, 휴가신청승인대기, 생일, 법정공휴일, 근무일 등이 자세히 나눠져 있다. 해당 직원이 속한 팀의 장은 부재, 법정공휴일, 근무일 등만 확인할 수 있다. 직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정보 공개를 제한한다. 네덜란드의 한 화학업계 대기업은 직원들의 업무용 이메일에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요일과 시간, 부재 중일 때 대신 업무를 맡는 담당자를 안내하는 내용을 적도록 하고 있다.

세계적 유제품 회사인 프루흐덴힐데어리푸드의 알버트 드 그로트 대표는 한국 기업들에 재택근무를 활용할 것을 적극 제안했다. “네덜란드 이상의 첨단 테크놀로지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에서, 유동적이고 탄력적인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를 실현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도의 경제력이라면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을 직원이 회사에 얼마나 헌신하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경쟁 회사보다 먼저 시작하세요. 차별화된 강점으로 살려내면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암스테르담·나이케르크·브뢰컬린=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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