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조차 몰랐던 아들을 만나러 가기 전 강능환(92)씨는 ‘아들이 누굴 닮았을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했다. 며칠 후 금강산에서 마주 선 아버지와 아들은 누가 봐도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분절되어 흘러 온 세월 속에서도 핏줄은 그렇게 질기게 이어져 왔다.
‘로또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죠”, “난 행운아야”지난 2월 가족상봉을 앞두고 만난 이산가족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카메라에 담긴 표정에선 기대와 설렘이 저절로 배어 나왔다. 그로부터 열 달, 혈육의 존재를 뜨겁게 확인하고 돌아 온 그들을 다시 만났다. 짧은 만남의 대가로 또 다른 이별을 겪고 있는 그들의 심경은 복잡했다. 내쉬는 한 숨 마다 그리움과 아쉬움, 후회와 걱정이 교차했다. 그 열 달 사이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중 2,632명이 세상을 떠났다.
“아이고…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주고, 등도 두드려주고, 안아도 주고, 이랬으면 좋았을 걸. 가슴이 콱 막혀선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와 버렸어” 석려(81), 학자(71) 두 동생의 사진을 꺼내 보며 김성윤(95)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헤어지는 순간 울먹이던 어린 동생들의 모습을 평생 품고 살아왔건만, 짧은 만남 뒤 찾아 온 두 번째 이별 앞에서 언니는 또 한번 무너졌다. 맏언니답게 토닥거리며 헤어지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두어 달 동안은 잠을 못 이뤘다. 동생들과 함께 한 2박 3일간의 만남에 대해선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할 말도 없고, 서로 그저 멀뚱멀뚱…”이라고 말하는 김씨의 시선이 힘 없이 사진 위로 내려앉았다.
“이번에 만나면 햇수로 65년, 달수로 758달, 날수로는 23,720일만이지”지난 2월 이산가족상봉을 앞둔 이명호(82)씨는 동생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26일 다시 만난 이씨는 “조카들이 ‘월남가족’으로 낙인 찍혀 고생만 하다 세상을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보고 싶었던 동생 철호(77)씨는 퀭한 눈에 삐쩍 마른 몸뚱이를 해서 나왔다고 했다. “결핵에 걸렸어. 욕심 같아서는 데리고 나와 1년쯤 요양시켜서 보냈으면 좋겠던데… 남쪽에서 결핵은 병이 아니잖아” 이씨는 5살 아래인데도 자기보다 훨씬 늙어버린 동생이 그 사이 세상을 떴을지도 모른다며 연신 한숨을 지었다.
꿈에 그리던 혈육, 손만 잡으면 60년 한이 눈 녹듯 사라질 것 같았던 이산가족들은 저마다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고 돌아왔다. 장춘(81)씨는 남동생 화춘(73)씨와 혹시나 했던 여동생 금순(76)씨까지 만나 여한이 없다면서도 동생들이 타먹던 배급이 끊길까 봐 안절부절 했다. 자신이 인민군 전사자로 처리된 덕분에 그 동안 가족들이 특별 배급을 받아 왔는데, 이렇게 턱 하니 살아서 나타났으니 그게 끊기지 않겠냐는 것이다. “괜히 간 것 같아. 내 한 풀겠다고 잘 살고 있는 애들한테 상처 입힌 건 아닌지. 잘 한 것 같기도 하고,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죄 지은 것 같기도 하고…”
엄동설한이라 눈길이 더 가던 얇은 여름 한복과 주위 눈치 보느라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불안한 표정들, 도저히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나니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어찌 살아갈지 잠이 오질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떠나 올 때 버스에 올랐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 마치 사막 같은 데다 나만 살겠다고 가족을 내팽개치고 오는 것 같아서…” 김동빈(79)씨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누님 정희(81)씨를 떠올리며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분단의 세월이 만들고 굳혀온 이질감이 가족간의 대화를 멈칫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어머니와 함께 상봉행사에 동행했던 한 참가자는“만나자마자 체제 선전을 쏟아 내더라고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주 자알 살고 있다’고 강조 하기도 하고.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야야, 우리보다 잘 산다는데 아무것도 주지 마라’하고 오기를 내셨겠어요”
하루 두 번, 한 두 시간씩만 허용됐던 토막 상봉도 지나고 보니 아쉽다. “울다가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벌써 시간 다 됐다고…” “가족애를 나누는 만남의 장이라기 보다 보여주기 위한 쇼 같았다”고 말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만남과 이별이야 추억으로 간직한다지만 또 다시 깜깜 무소식을 견뎌야 하는 현실은 괴롭기만 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편지만이라도 왕래할 수 있다면 좋겠어. 아프리카도 편지는 가잖아” 김세린(84)씨는 살아서 고향 땅을 밟는 꿈을 꾸고 있다.“또 만나고는 싶지만 아직 못 만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가능하겠나. 통일이 돼야지. 밤마다 기도하는 게 그거야. 5년 안에만 통일시켜 달라고”
사진부 기획팀=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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