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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신을 웃게 만들기

입력
2017.11.29 15: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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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웃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앞에서 네 인생계획을 말해봐.” 당장 앞의 일도 모르는 삶에서 인생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신이 만들어 놓은 계획을 잠시 엿볼 수 있을까? 내 선택이 맞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사람들은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고 역술가를 찾기도 한다.

수능 시험이 끝났다. 미로 같은 여러 전형방법 사이에서 많은 수험생들은 어느 대학, 어느 진로를 고를지 고민한다. 온갖 교육 제도의 생체실험을 거치며 그 힘든 과정을 수험생들과 가족들은 묵묵히 괴로워하며, 그러면서 서로를 위안하며 지내왔을 것이다.

종종 학생들의 진로 상담을 해 줄 때가 있다. 전공지식에 대한 질문보다도 가끔씩 학생들의 인생계획을 들으면서 무엇을 할지 함께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더 반가울 때가 있다. 그래서 기꺼이 신을 웃겨드리는 공범이 된다. “이런 거 하면 전망이 좋을까요?” “이런 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음... 본인의 적성과 역량에 잘 맞아야 할텐데,” 함께 이런저런 전략을 구상해 보다가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본인이 제일 잘 하는 게 뭐니?” “네?” “그냥 본인이 잘하는 거.” “○○학이요” “아니, 그런 거 말고, 더 구체적으로?” “성실히 노력하는 거요” “아니 더 쉽게, 가령 밥을 잘 먹는다든지, 그런 거.” “글쎄요, 학점도 나쁘지 않고, 파워포인트도 잘 만드는데... 잘 모르겠어요 딱히 없어요.” “그럼 뭐를 좋아하는데?” “유학도 가고 싶고, 공기업도 가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

사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아는 것은 인생계획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거의 모든 시간을 무엇을 해야 한다고만 강박적으로 들으며 지내왔고, 많은 것을 해 볼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 아닌가. 이상적으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한번씩 바꿔 적을 때마다 그 동안 쌓은 ‘스펙’이 와르르 무너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과정을 겪어온 학생들은 잔뜩 소심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되묻는다. “제가 뭘 잘하면 좋을까요?”

한 세대 전에는 웬만큼 노력하면 성장 경제의 한 귀퉁이에서 자신의 직장과 삶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급속도로 탄력을 잃어가는 저성장 국면에서는 노력하고 노오력을 해도 원하는 기회를 갖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특정 학문과 전공의 시대가 아니다. 대신 자신의 특기가 더욱 필요해진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는 이론적인 탐색만으로 되지 않는다. 교육의 기회 균등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와 동시에 다양한 교육 방식과 교육 주체들도 필요하다. 그 모두를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옷을 입혀서는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없다. 이상적인 교육의 목표는 모두 가지고 있지만, 현실로 들어오면서 마치 누더기처럼 되어버린 미로와 같은 입시 제도를 단순화시키고 개선하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그래야 젊은 학생들에게 인생계획을 다시 써 보고 언제든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용이하게 주어질 수 있다.

인생계획을 얘기했을 때 신은 왜 웃으셨을까? 과연 신이 만들어 놓은 인생계획은 정답이 있는 것일까? 쭈뼛쭈뼛하며, 아니면 겁 없이 얘기한 그 인생계획이 어쩌면 정답이었기 때문에 웃으신 게 아닐까? 가소롭게 신의 영역을 넘보아서 괘씸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인생의 계획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과정이 바로 정답이 아니었을까?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내린 수험생들, 그리고 많은 청춘들, 한 번 신을 웃겨드렸으면 좋겠다. 나중에 바꾼 답도 여전히 정답이 될 수 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한 번 돌아다보자. 길은 이제 시작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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