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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피스메이커와 미세먼지

입력
2018.01.23 13:5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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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2월 5일부터 엿새 동안 런던은 여느 때처럼 안개로 뒤덮였고 유난히 추웠다. 런던 사람들은 석탄을 더욱 많이 땠다. 때마침 런던의 대중교통을 전차에서 디젤 버스로 전환하는 사업도 완료됐다. 가정과 버스 그리고 화력발전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황산으로 변했다. 연기(smoke)와 안개(fog)가 결합하여 스모그(smog)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 런던에만 거대한 스모그 현상이 이미 열 번 이상 일어났다. 시민들은 산업 발전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스모그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서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무대와 스크린이 보이지 않아서 연극과 영화 상영이 중단돼도, 집 안에 가만히 있어도 눈이 아프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도 영국 정부와 런던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냥 저냥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12월 5일부터 일주일 동안 기관지 질환으로 죽은 사람이 다른 해 겨울보다 4,000명 이상 늘어났다. 희생자는 대부분 유아와 노인 그리고 만성질환자. 그해 겨울이 끝날 때까지 런던 스모그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만 2,000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 의회는 무려 4년이 지난 1956년에야 청정대기법을 제정했다. 마을과 도시에 연기가 발생하지 않는 무연 연료만 태울 수 있는 구역을 설정하고, 가정용 난방 연료로는 무연탄, 전기, 가스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화력발전소는 도시에서 먼 곳으로 이전했고 굴뚝을 더 높였다. 청정대기법은 영국 시민들에게 깨끗한 공기와 건강을 선사하였다. 영국인들은 이제 겨울을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사회에나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있다. 피스메이커란 분쟁과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애쓰는 중재자를 말한다. 하지만 상담학에서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생기는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모든 덤터기를 씌우는 사람을 뜻한다. “셋째 며느리가 새로 들어온 다음부터 우리 집은 조용할 날이 없어.” “미꾸라지 같은 김대리 때문에 총무과는 바람 잘 날이 없지.” 같은 식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겠는가? 문제 해결을 위한 복잡한 조사와 토론을 하려니 힘들고 어쩌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것 같으니까 어리버리한 사람에게 모든 혐의를 씌우는 것이다. 물론 피스메이커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만만한 피스메이커가 되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중국 탓으로 돌린다. 물론 황사도 중국에서 오고 미세먼지도 중국에서 온다. 대기 문제를 토론하던 사람들도 종국에는 중국 탓을 하며 마친다. 갑자기 평화가 찾아 온 듯하다. 우리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다. 문제는 그래 봐야 진정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대기에는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이 미세먼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는 쉽게 ‘중국’이라고 말한다. 미세먼지 농도를 보여주는 위성사진을 보니 중국의 대기는 끔찍한 상태였고 그 미세먼지 뭉치의 꼬리가 서울과 인천, 경기도까지 걸쳐 있다. 음, 역시 중국이다. 중국은 한국 사회의 피스메이커다.

미세먼지의 정체를 살펴보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미세먼지 성분은 크게 황산염과 질산염 두 가지다. 황산염은 주로 중국 공장에서 발생하고 질산염은 우리나라 자동차와 가정 난방에서 생긴다. 이번 미세먼지 사태 때 황산염은 평소보다 3.6배 늘었지만 질산염은 10배나 늘었다. 미세먼지의 출처가 우리나라라는 것은 희망의 근거가 된다. 우리가 변하면 미세먼지 농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자구책을 찾는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소캔을 가지고 다닌다. 시민 스스로 살 길을 찾으려는 노력은 훌륭하다. 그런데 시민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훌륭한가! 중앙정부와 국회는 거시적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고 법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정부는 심각한 상황에 즉각적인 대처를 해야 한다.

서울시가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 수단을 무료로 제공하고 자동차 2부제를 권고했다. 안타깝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시민들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하다. (시민을 위해 쓴 예산이 왜 낭비인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50억씩 예산을 낭비했다고 서울시를 질타하는 인근 지방정부도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ㆍ환경 전문가 이유진의 말처럼 경기도는 틀렸고 서울시는 부족했다. 서울시의 대책이 성공하려면 경기도와 인천도 함께 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발적 2부제가 아니라 강제적 2부제가 필요했다.

이 상태로 가면 206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사망이 OECD 국가 중 1위가 될 것이라고 한다. 런던 스모그의 판박이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중국이라는 피스메이커는 포기하자. 문제를 드러내고 토론하자. 우리에게는 과도하다고 느낄 정도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시민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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