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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규제의 본질과 역설

입력
2018.01.21 16: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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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規制)의 목적과 동기, 그리고 규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이론적 설명들이 있다.

먼저, 정부의 규제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를 편의상 ‘공익이론’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경제원론에 따르면 시장은 완전경쟁균형의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외부적인 개입이 없더라도 시장 참가자들 각자의 합리적 선택들이 공동체 전체의 가장 이상적인 자원 배분의 결과로서 집합적 합리적 선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현실의 시장은 완전경쟁균형의 여러 가지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조건의 미충족은 외부 효과, 독과점, 공공재 공급의 부족, 정보의 불완전함 등과 같은 시장 실패로 이어진다. 공익이론은 정부의 규제는 이러한 시장실패를 극복하고 교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공익이론의 설명에 부합하는 많은 규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외부 효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환경규제, 독과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쟁법적 규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공시 관련 규제 등이 그 예이다.

현실의 규제가 공익이론의 설명에 따른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제 발생하고 있는 시장실패의 내용과 정도가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된 규제의 수단과 내용이 그 시장실패의 문제를 적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으로서 규제가 더 큰 실패를 만들어내고 이는 온전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규제의 본질에 대한 다른 설명의 대표적인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의 ‘규제에 대한 경제적 이론’이다. 이 이론적 관점에 따르는 경우 규제는 공익이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은 어떤 선험적인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규제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경우에 따라서 그 의사에 반하는 내용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그 본질로 하고 있는데, 규제는 그 규제의 내용에 따라 영향을 받는 모든 이익집단들이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과 경쟁을 한 최종적 결과라고 설명된다. 그 최종적 결과는 규제입법과 규제행정작용이라는 형태의 균형점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서의 이익집단에는 소비자로서 개인, 생산자로서 기업, 각종 직종별 단체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관료집단 등이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이 이론적 관점을 따르는 경우 중요한 것은, 어떤 규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 규제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회의 모든 개인과 이익집단들이 균등하게 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의 과정이 그 각 이익집단들의 선호의 표현을 정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의 과정이 특정 이익집단의 과다한 선호와 이익을 왜곡해서 반영하고 있거나,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선호 및 시대의 변화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경우 그 최종적인 결과는 공동체의 비극으로 이어지게 된다.

현실적합성이 없음이 판명되어서 더 이상 이론적으로 거론되지 않는 규제에 관한 설명이 있다. 규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에 대한 국가의 가치판단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가치판단의 규범적 근거로는 종교적인 가치, 윤리적인 가치, 이념적인 가치 등이 있을 수 있다. 중세 봉건 국가, 성리학적 가치가 지배하던 시절의 중국과 조선,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공산권 국가 등에서의 규제는 그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각 개인들의 일상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종교, 윤리, 이념 등과 같은 공익적인 명분을 띠고 이루어졌고, 그 결과는 대개는 비극적인 자유의 박탈이었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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