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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여제 린지 본 “굿바이,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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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여제 린지 본 “굿바이, 올림픽”

입력
2018.02.23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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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부상ㆍ재활 반복 ‘오뚝이’

한국전쟁 참전 조부에 스키 배워

“은퇴 전에 86승 달성하겠다”

린지 본이 21일 강원 평창군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알파인스키 여자 활강 동메달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평창=EPA 연합뉴스
린지 본이 21일 강원 평창군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알파인스키 여자 활강 동메달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평창=EPA 연합뉴스

“이 여자는 멈출 수 없어(This girl is on fire).”

지난 1일 미국 슈퍼볼 대회에 방영된 1분짜리 NBC 광고에는 린지 본의 스키 인생이 담겨있다. 알리샤 키스의 명곡 ‘걸 온 파이어(Girl on fire)’를 배경으로 제작된 이 광고 속에서 본은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로 최고의 영광을 누리지만 이후 경기 중 전복 사고를 당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헬기에 몸이 묶여 긴급 후송될 만큼 심각한 사고였다. 2014 소치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본은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회복훈련으로 땀을 흘린다. 힘든 재활 속에서도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결국 2018 평창올림픽 출전에 성공한 본은 22일 강원 정선군 정선알파인센터에서 열린 알파인스키 여자 복합 경기를 끝으로 19년에 걸친 올림픽 여정을 마무리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재활을 거쳐 슬로프에 돌아오기를 수 차례 반복한 본의 스키 인생은 그 자체로도 한 편의 영화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본은 2006년 토리노 대회 훈련 도중 넘어져 헬기로 응급후송 돼 밤새 치료를 받은 뒤 이튿날 출전을 강행, 8위에 오르며 강한 정신력을 뽐냈다. 오른팔에 철심을 박고 출전한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는 경기 도중 오른쪽 손가락 골절을 당했음에도 활강 금메달, 슈퍼대회전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2013년 세계선수권 도중 전방십자인대와 내측측부인대가 동시에 찢어지고 정강이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소치올림픽 출전이 좌절됐지만 NBC의 올림픽 특별 해설가로 활동할 만큼 애정이 남달랐다.

본이 이날 마지막 경기를 펼친 정선은 할아버지의 영혼이 깃든 곳이라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본의 할아버지 도널드 킬다우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정선은 도널드 킬다우가 한국전쟁 당시 지켰던 곳의 인근으로 알려져 있다. 킬다우는 본에게 스키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본은 지난해 11월 세상을 뜬 할아버지를 애틋하게 생각한다. 지난 9일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딘가에서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계실 거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힌 이유다. 그의 헬맷 왼쪽에는 할아버지 이니셜인 ‘D.K.’가 하트 모양과 함께 새겨져 있다. 본은 할아버지가 전쟁 중 지켰던 그 곳에서 올림픽과 작별했다.

본은 이날 펼쳐진 복합 2차 주행 회전경기에서 기문을 지나치며 실격 당했다. 최근 무릎부상으로 회전 종목 훈련을 거의 못 한 탓이었다. 메달을 기대한 팬들은 아쉬움의 탄식을 뱉어냈다. 하지만 경기를 마치고 난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이날 1차 주행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봤을 때 내 얼굴에서 큰 미소를 발견했다”는 말로 기분을 표현했다.

올림픽에서의 여정은 마무리됐지만 본의 스키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스웨덴)가 갖고 있는 남녀 통합 최다 우승(86승)을 넘보고 있다. 여자 최다 우승(81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본은 “나의 무릎 상태가 4년을 더 버텨주지는 않을 것 같아 다음 올림픽 출전은 어렵지만, 경기력이 되는 한 스키를 계속 타겠다. 86승을 달성할 때까지 스키를 타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내보였다.

본이 실격한 이날 경기에선 미셸 지생(스위스)이 금메달, 미케일라 시프린(미국)이 은메달, 웬디 홀데네르(스위스)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정선=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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