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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대륙의 실수

입력
2016.08.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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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만든 제품 중에서 질이 우수한 것들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이다. 화웨이의 스마트폰이나 샤오미의 보조 배터리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전까지 중국 제품은 값은 쌌으나 질이 낮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값이 싸거나 ‘리즈너블’하고 성능이나 질도 뛰어난 제품이 적지 않다. 중국은 저질의 싸구려 제품만을 만든다는 과거의 고정 관념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질 좋은 제품은 놀랍게도 마치 실수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나온 표현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시작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대륙의 실수’라고 본다. 중국은 직접 혹은 간접의 보복, 또는 노골적이거나 은근한 보복 조치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 보복이라는 것은 결국 저질의 ‘메이드 인 차이나’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리즈너블하면서도 질이 뛰어난 대외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나는 동북아시아에 사는 한 마리의 ‘개돼지’로서 늘 중국의 부상을 반갑게 여겼고 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안타깝게 여겨 왔다. 국민경제가 좋아지면 비록 양극화가 진행되더라도 얼마쯤은 민중의 삶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고, 또 국민경제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대부분의 민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나쁜 민족주의를 늘 경계해 왔다. 민족주의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는데, 악마적이고 광신적이고 국수주의적이고 배외주의적인 형태의 민족주의는 결국 각 나라의 민중을 억압하고 또 더 나아가서 다른 나라의 민중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형태의 민족주의는 대개 각 나라 안의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나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일자리 없는 젊은 사람들을 개무시하기 마련이다.

사드 배치에 관해서, 나는 이것이 미국의 안보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꾸준히 또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다. 사드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이익, 정확히는 미국 지배 엘리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이익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민중들의 이익은 아니다. 여기서 미국의 민중이라 함은 샌더스를 열렬히 지지했던 많은 사람, 그리고 상당히 실망스럽게도,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어느 나라든 국가 안보는 그 나라 지배 엘리트의 입장에서 정의된다. 한국의 안보, 북한의 안보, 중국의 안보, 미국의 안보, 일본의 안보도 다 마찬가지다. 각 나라의 국가 안보는 대개 민중들의 삶이나 안전하고는 관련이 거의 없다. 단지 지배 엘리트의 헤게모니를 위해서, 그리고 지배 엘리트의 입장에서 각 나라의 안보가 정의되는 것이다. 북한은 자국의 안보를 내세워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일본은 자국의 안보를 내세우면서 반평화적 개헌을 추진하려고 한다.

한국의 ‘개돼지’들, 그중에서도 내가 속한 세대는 젊은 시절부터 박근혜 아버지의 개발 독재와 싸우면서 민주주의를 성취해냈는데, 이 과정은 개발 독재가 명분으로 내세우던 ‘국가 안보’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타파하고 전복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야말로 한국 국가경쟁력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이룬다. 나는 ‘국가경쟁력’이란 말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견이 중국의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고, 또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시절의 국가 안보 논리를 내세워 이를 비난하고 있지만 실은 이런 일들이야말로 한국이 성취한 민주주의의 놀랍고 위대한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소수 의견 및 반대 의견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20년’에 돌입할 수도 있다. ‘이명박근혜’ 시절의 잃어버리고 있는 10년이 더 연장될 수도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보복은 틀림없이 한국 민중의 삶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중국의 당과 국가는 한국 민중을 적으로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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